아고라

[스크랩] 20대! 나는 중산층?

fiat 2007. 3. 25. 16:22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이 자신은 서민(하층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인식만 그런 것이 아니고 아마도 그대로의 현실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20대와 40대 중에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40대는 한창 경제 활동이 왕성하고 직장에서 중간 관리층을 점하고 있으니 중산층이 많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20대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했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할 것이다.

한국처럼 부모가 자식을 결혼할 때까지 뒷바라지 하는 사회에서는 젊은 세대의 계층 인식에 심한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다. 부모에게 지원을 받아 풍요로운 20대를 보내는 젊은이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놓여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벌어보지 못하니 돈 벌기가 아주 쉽다고 여긴다. 대개가 대학을 다니다 보니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생활수준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진다. 같은 대학을 다니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문화를 즐기니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이 별 차이 없이 산다고 느끼고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비슷한 수준의 경제생활을 누리는 것은 가정마다 소득 수준이 균등해서가 아니다. 보통의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엄청나게 희생하고, 가난한 부모라면 그 보다 몇 배 더한 희생을 해서 얻어진 결과라는 말이다. 부유층 부모는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자식에게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있지만, 가난한 가정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윤택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자식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수 밖에 없다.

현재 386 이후 젊은 세대들의 정치 인식이 왜곡되고 보수화 되는 현상은 우리나라 정치 발전의 큰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젊은 세대는 여전히 중년 세대에 비해 진보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80년대 학번보다 90년대 학번들이 더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것처럼 진보성의 후퇴 현상이 엿보인다. 2000년대 학번도 아마 예외가 아닐 것이다. 풍요로운 시기를 거친 90년대 학번들은 20대에 자신이 어느 계층에 속해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90년대 학번들은 80년대 학번들과 정치적, 사상적으로 심각한 단절을 겪다보니 부모로부터도 많은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 부모 세대에 대해 더 의존적이 되다 보니 부모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답습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게 되었다. 나를 먹여주고 키워주었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결혼 자금과 주택 자금까지 지원해주는 부모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부모의 정치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 결과라는 말이다.

그래서 90년대 학번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부모의 희생 위에서, ‘세대 간의 착취’를 기반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회생활을 통해 홀로서기에 나서는 순간부터 현실 인식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되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부모들은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져 있었고, 자신이 얼마나 낮은 계층에 속하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해하고 인식을 갖는 과정에는 보통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계층 경험’과 ‘계층 인식’, ‘계층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계층 의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계층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일상적 경제적 경험을 통해 자신이 사회에서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에 대한 계층 인식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계층 인식을 바탕으로 자기가 속한 계층에 소속감을 느끼며,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계층 의식이 생겨난다. 이런 논리 구조로 본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잘못된 계층 경험으로 인해 계층 의식이 왜곡되어도 한참 왜곡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층 의식이 바로 정치 의식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 우려가 깊어진다.

그리고 위와 같은 '세대 간 착취'와 '젊은층의 보수화' 경향의 뿌리에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상속제도'가 자리 잡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20, 30대가 부모의 지원과 도움으로 편하게 대학 생활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으니 상속제도의 모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어리석고 단순한 생각이다. 가난한 부모의 자식에게 그러한 부모의 헌신과 희생은 평생을 두고 물질적, 정신적 짐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자식을 위해 젊음과 윤택함을 모두 포기해 버린 부모들을 자식은 '착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속과 양육이라는 하향식 희생 구조는 국민연금과 부양이라는 상향식 희생 구조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순적 상황에서 그저 희생의 악순환만 되풀이 될 뿐, 그 과정에서 계층의 순환이나 재분배는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가난한 부모 세대가 가난한 자식 세대에게 양육이라는 희생을 강요받고 이러한 보답으로 가난한 자식 세대가 가난한 부모 세대를 봉양하는 희생의 순환 고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유층에 의한 분배적 기여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 자식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어 유학을 보내고, 이민을 보낸 부유층은 오히려 가난한 부모들의 남은 자식들에게 사회적 인프라와 연금을 부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상속을 얼마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수 없이 많다. 학생을 입학시키고 사원을 입사시키는데도 부모의 직업과 재산 정도를 조사한다. 학교에서는 가정환경 명목으로 아이들의 생활수준을 조사하니 없는 집 아이들은 상처를 입는다. 기업에서 돈 많은 집 자식들을 선호하다보니 입사지원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기 집 재산을 부풀려 원서에 기입한다. 전에 한 보수신문의 기자가 ‘돈의 힘으로 자식들을 굴복시키자. 부모의 보수적인 생각에 저항하는 자식에게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여 부모의 생각을 따르게 하자.’는 주장을 지면에 대놓고 펼친 일이 있다. 이런 주장이 일면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돈 없는 자식들이 돈 많은 부모의 눈치를 봐야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반대로 부모가 자식의 보살핌으로 노후를 보내야 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는 더 많다. 만일 다른 언론에서 ‘보수적이고 독선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자식들은 용돈을 드리지 말자.’고 했다면 보수 언론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보수라고 자처하는 언론이 사실은 가진 자만의 입장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부모 세대의 치부 과정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려고 하는 젊은 세대의 행태 속에도 같은 맥락의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다. 부모에게 기댈 여지가 있는 집 자식들은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돈을 벌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의 덕으로 교육을 받고 결혼을 하며 직업까지 얻으려는 ‘부(父)바라기’들이 늘어만 간다. 그러니 자기에게 재산을 물려줄 부모를 존경하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부모의 생각을 비판 없이 따르는 ‘부(父)따라기’가 되어 버린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고민이 없고, 오직 재산을 가진 내 부모의 가르침이 최고라고 여기는 생각 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사회문제가 되어온 오렌지 족, 캥거루 족, 부메랑 족, 헬리콥터 족들의 면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상속제도의 모순과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최근 재벌 2세들 사이에는 자동차 수입 회사를 차리는 것이 붐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만 봐도 우리의 상속 구조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가져오는지 잘 알 수 있다. 지금의 부잣집 자식들은 자기 노력으로 부를 개척하려는 의지가 없다. 그저 물려받은 재산을 유지만 하고 편하게 살아갈 생각만을 한다. 모험과 투자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려하지 않고 그저 자동차 수입처럼 편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고 돈을 벌 수 없는 가난한 자의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가난한 집 자식들은 그들대로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고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결국 발전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집단이 없으니 사회는 퇴보를 거듭하게 되고 결국 사회는 망하는 일만 남게 된다.

자신이 부모에게 엄청나게 많은 것을 물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도 그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고, 그릇된 지배층의 논리에 놀아나는 많은 젊은이들을 볼 때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풍요로운 20대 시절'.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큰 재앙이 되고야 말 것이라는 염려를 나는 지울 수가 없다. 20대 들이여! 당신은 진정 부유층이고 중산층인가? 그것은 그저 착시 내지는 착각이 아닌가? 자신이 입고 먹고 쓰는 것만 바라보지 말라. 당신이 그렇게 소비하기 위해 당신의 부모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바라보라. 그리고 제발 고마 정신 좀 차리라! 나이도 마이 묵었다 아이가?
출처 : 사회방
글쓴이 : 누구세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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