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스크랩] 新偶像 時代의 選擇

fiat 2008. 11. 21. 11:37

新偶像 時代의 選擇

- 보고 듣기 불편한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들어야만 하고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이야기

담담당당

들어가면서#

< 시대시리즈와 몰지각 시리즈 > 를 읽지 않은 사람이 이 글을 읽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만큼 이제 쓸 내용은 다분히 직설적이다. 나는 한 치도 이 내용에서 뒷걸음을 칠 마음이 없다. 이건 기록이고 또한 나의 자성(自省)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물어본다. ‘이 내용을 정리하지 않으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가 ’라고. 대답은 ‘그렇다. ’

굳이 많은 전제를 두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시대가 이제는 침탈에 대한 몰지각(沒知覺)이 굳어지는 상태라고 보는 때문이다. 어떤 이의 표현처럼 ‘기다려라! ’라고 말하 면비겁 한 것이 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건 스스로에게 그저 위안을 위해 던지는 한 마디 변명 에 불과하다 취급될 수준이 바로 오늘이다.

MB정권은 ‘일본의 사냥 개’다. 굳이 미국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미국이 일본과의 담합에 의해 이 정권을 부리는 공동의 사냥꾼이기에 그렇다. 그건 버락 오바마 정권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함축되는 ‘일본 ’이라는 단어에는 반드시 ‘미국 ’과 그들의 세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이 글의 제목이 ‘허상의 파괴, 신우상 시대의 선택 ’으로 잡힌 것은 두 가지 명제가 담겨있다.

  • 첫째, 허상의 경제다. 삶의 목적 가운데서 경제가 차지하는 가치의 소재(所在)를 잘못 잡은 세상이 흘러간다. 그 속에서 경제적 기득권이 정치와 사회, 시대를 장악하면서 이제 역사를 건드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를 허용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정책노선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인지(認知)가 이를 방관하고 수용했기에 가능했던 대목이다.
  • 둘째, 새로운 우상이 등장했다. 이 또한 경제다. MB정권은 ‘경제살리기 ’라는 모토를 내걸었지만 그 우상은 빠른 속도감을 동반하며 죽어버렸 다. 그런데 이상하게 변형 되고 변용된 상태에서 새롭게 우상을 등장시킨다. 그 또한 경제다. 시대도 역사도 거기에는 없다. 그래서 거꾸로 이를 죽이려는 의도가 생성된다. 교통정리를 하자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식민(植民)이라는 개념하에 탄생된 ‘노예화 프로그램 ’이라는 것임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를 정리해보는 일이 가치 있거나 없거나 논할 바는 아니다. 그래서 이건 기록이라고 말한다. 나의 유서(遺書)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니 죽기 전에 쓰는 모든 글은 사실상 살아있었던 인지(認知)와 자각(自覺)의 흔적이 된다.

지금까지 ‘지월산장(止月山庄)에서 쓰다 ’라는 어느 가상의 장소를 필명으로 하는 글을 썼다. 이번에는 그렇게 장소를 표기 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이 바로 ‘나’라는 주체가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월산장은 사라진다.

되물어볼 것은 한 가지다.

“당신은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보는가? ”

이렇게 내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답변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걸 내게도 던진다. 이제 그에 관하여 담담하게 당당하게 답하려고 한다.

1. ’선택 ’의 의미 재발견#

나의 아버지는 19세기 분이다. 1898년 무술년 생이시니 살아계시면 금년 만으로 110살이 되신다. 지난 여름 선친의 생신은 지났다. 111년 차의 과거와 현재를 내 생에 그 분과 함께 보게 되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쭉 그 분과 함께 보며 갈 것이다. 3 세기에 걸친 관조(觀照)를 해보는 셈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의 아들, 딸이 3세기를 이어가고 다음 세대가 다시 4세기, 5세기로 넘어가주기를 바란다.

백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당시의 ‘조선 ’과 지금의 ‘한반도 ’에 무슨 특별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단 해방 이후 남북한으로 갈라진 분단역사가 60년 넘겨 지속되고 있다. 경제적 발전을 이룬 남한의 경우 친미와 친일이라는 수구가 걷히지 않았고, 그와 더불어 수령체제와 장군체제의 북한은 80년대 말 이후 경제적으로 완전 수렁에 빠져 있다. 둘 간에는 접점이 나오지를 않는다. 지난 10년, 두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으로도 본질적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갈등만 대폭 더 양산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한반도 남부에 대한민국이란 정부가 수립된 지 딱 60년 만에 우리는 일본을 한국에 받아들이는 ‘친일대세론 ’에 직면하고 있기 도 하다 .남북은 분단을 정리할 이렇다 할 제대로 된 매개(媒介)도 성숙시켜 놓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자주(自主)없는 외세 의존의 현상과 관념으로 살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1865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일왕을 앞세운 제국주의 고착화를 서둘렀고 결국 조선반도 침탈, 만주국,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까지 치렀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도 몹시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다. 그 시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백 년이 넘는 역사가 흐르고 있지만 그들은 이 기조(基調)를 변경하거나 멈추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제와 훨씬 더 강하게 팽창주의를 한국에서 실현코자 하는 중이다. 과거의 실패까지 감안해서, 다시 실수하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그 족적은 남한에서 이제 날개를 달기 일보직전까지 왔다.

2010년을 향한 그들의 집착은 새로운 주기인 ‘주년 ’(周年)을 만드는 것으로 모두 집중되고 있다. 일반적인 절차로 평화적 해결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로지 ‘공격 ’이 있고, 그 속에는 강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들의 침탈 방식은 대단히 촘촘한 구석이 있다. ‘일본식 ’이라고 한 마디로 폄하해서 표현하 는 건 곤란하다. 전방위(全方位)에 걸쳐 빠진 구석이 없는가를 면밀히 살피는 ‘기획침략 ’이라고 해야 옳다. 그러한 살벌한 팽창주의가 실제로 한반도에서 지금 진행 중에 있다.

즐겨 쓰는 수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냥개를 앞세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부분을 장악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항상 금력과 무력은 그것을 위한 수단이 된다.

(을사늑약[제2차 한일조약] 한글본. 1905년 11월의 일은 2005년 11월에 라도 정확하게 기억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무시했고, 그 죄업을 뒤집어 쓰는 중이다. 역사는 확실히 멈추지 않으니 흐른다.)

1898년의 조선도 그랬다.

2008년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는 이른바 ‘경제 살리기 ’라는 주제에 함몰되어 있었다. 그것만 될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건 상관없다는 편협된 생각들이 사회 전반에 넘쳐 흘렀다. 그것은 보수니 진보 같은 관념적인 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인정하지 못한다면, 비겁한 것이다. 사회와 국가 전체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일 뿐이다.

백 년 전과 전혀 다르게 벌어진 일은 바로 ‘기득권 ’을 유지하려는 세력 간의 내부적 혈투가 아니며 정체성에 대한 논란 자체가 제대로 벌어지지 조차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위험에 대한 반응 정도다. 분명히 한나라당은 뉴라이트라는 친일집단을 전위(前衛)에 두고 선거전을 치렀다. 그러나 선거는 시시하게 끝났다. 국민들의 친일에 대한 거부감은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명확하게 표명되 고 전달되거나 여론으로 형성되 지 않았다. 단지 무덤덤하게 수용한 것이다. 침묵과 방관의 이면에는 ‘경제욕망 ’이 거기에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 내의 두 개의 욕망은 그렇게 접점을 찾아서 갔다.

한편으로 본다면, 국민들이 친일의 기득권을 인정한 첫 번째의 선거이기도 하고, 나아가 지난 십 년 동안 새롭게 생긴 “민주, 평화, 통일, 개혁 ”이라는 구호 아래 생긴 또 다른 형식의 기득권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측면도 포함된 결과였다. 여하간에 수용을 했다는 이 사실이 현재의 관점에서는 ‘국민의 선택 ’이 바로 ‘친일 ’이었다고 단정해도 무방할 입장이 된 셈이다.

아니라고 부인하는가?

‘경제 살리기 ’라는 주제로 돌아가 보면,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바가 얼마나 억지이며 거짓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민족주의를 버려야 한다 ”거나 “경제를 살리려면 일본과의 경제동맹을 해야 할 터이고 국민이 잘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다 ”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경제 ’라는 마법에 홀렸지만 그로부터 사실상 온전한 경제 , 경제역량의 추구점은 파괴되었다. 바로 종속이란 최악의 상황이 완벽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성립과정이 어떠했건 간에 한반도에 사는 사람으로 일단 ‘분단역사의 비극 ’따위는 팽개치고 자본이기주의에 함몰되었던 국민들에게 과연 현 사태를 비난할 자격은 주어지는가를 되물어야 할 때 같다.

“선택 했으므로 반대를 말할 수 없다 ”는 것이 새롭게 등장한 친일정권의 자기 딴에는 합리적이며 법치국가의 논리라고 내놓은 주장이다. 국민 일각에서 “주권재민이므로 그에 반하는 정책에는 반대할 권리가 있다 ”고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법’을 완전한 것으로, 또한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까지 판단한다. 이미 공권력은 정권의 손에서 ‘친일의 재구성 ’단계를 넘어서 ‘친일의 완성 ’을 위해 진행 중에 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상태에서 서로가 하나의 옷을 두고 씨름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선택 ’이라는 단어 의미가 부여된다.

  • 하나는 ‘선택된 상황의 한계 ’가 어디까지 인가 하는 해석의 문제다.
  •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선택이 가능한가 ’라는 자기 의문이다.

정권의 친일 성향은 둘째치고, 그들에게는 가야 할 목표가 있다는 건 앞선 자료들에서 충분히 설명해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공권력이건 아니면 문화정책이건 유화정책이건, 또는 롤러코스트 국면을 조장해서 피할 수 없이 사회 국가 자체에 일본을 깊숙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성공 ’인 셈이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다면, 그것은 묵인(默認)이 되는 것이고 그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가 ‘친일은 수용할 수 없다 ’는 의사를 표시하는 셈이 된다.

여기에도 ‘경제 ’는 만능의 카드다. ‘나만 잘살면 그만이다 ’라는 생각을 가진 부류가 한국이란 사회 국가에 지천으로 깔린 것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이건 한 마디로 코미디다. 사회 가 ‘시대 정체성 ’을 완전히 포기하고서도 국가라는 간판을 걸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완벽한 딜레마에 봉착했다. 그와 같은 상황마저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의 숫자도 꽤 많다.

‘자본주의 ’, ‘개인주의 ’‘역사성 ’을 뛰어 넘는 새로운 이념으로 작용하는 흔적이다. 즉,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한국 사회의 국민성 자체가 역사주체성을 버리고 개인적 자본이기주의의 대열로 완전하게 접어들었다는 걸 의미 한다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교육, 법률 등 모든 분야에서 기준점이 ‘경제 ’라는 잣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으로도 해석된다.

과연 그런가?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가? 그것을 당신은 허용한 바가 있는가?

이 질문은 본질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적용된다.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친일을 해도 당신만 잘 산다면 수용하겠습니까? ”

“당신은 친일을 해서 우리를 잘 살게 만들겠다는 정권의 판단과 의도를 믿습니까? ”

“당신은 친일을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정말 믿으십니까? ”

여기에 어떻게 대답해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이니 반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주 ‘건조한 진실 ’하나가 부각된다는 점이다. 친일을 해서 당신이 잘 살 수 있는 확률에 대한 부분과 친일을 해서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명제는 전혀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으로부터 출발된 다.

왜냐하면 과거 백 년 전의 조선에서 민중이 친일의 치하에서 잘 살았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뉴라이트는 식민지근대화론으로 ‘그랬다 ’고 강변한다 . 그 연구는 일본자금으로 이루어졌다.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 수탈경제 속에서 1930년대 이후에는 완벽한 전쟁물자기지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숱한 조선의 사람들이 강제징용으로 일본의 탄광에서 전쟁터에서 죽었다. 완벽한 노예 같은 기계적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팽창주의 역사는 절대적으로 상대를 침탈한다는 것을 대명제로 삼는다. 제국주의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란 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그들 내부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팽창주의 외에 대안이 없다. 그러므로 잠깐 착시현상에 의해 잘살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허상(虛想)에 불과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아주 건조한 진실이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무시한다.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그 속에서 이른바 ‘친일의 사냥개 ’가 누리는 기득권이 있다. 경제 기득권이기도 하고 정치적인 주류형성과 편입 , 안착 구도를 의미한다. 그게 자본주의 구도와 묘하게 결합하고, ‘나도 기득권이 될 수 있다 ’는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본질은 간단하다.

“당신은 친일입니까, 아닙니까? ”

이 대답은 양자택일이지 중간이 존재하는 법이 없는 것이 바로 한반도 역사의 오늘이고, 내일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일본은 그들 방식의 제국주의와 팽창주의 대상으로 한반도를 포기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명백한 진실이 있 다. 상대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스스로가 중간 의 회색지대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건 자기기만이다.

약간 지겹고도 구태의연한 이 논쟁이 작금 한국 사회에 다시 던져지는 이유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의 문제 고 어제와 내일을 함께 건 과제 다.

“당신은 친일정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당신은 친일정권의 친일적 정책행위와 친일을 위한 독재행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에게 있어 친일은 수용 가능합니까? ”

개인적으로 현재의 국가보훈처장을 하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 ‘김 양’씨에 대해서는 미리 불만을 표시한 바가 있다. (시대 시리즈를 참조 바란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왜색 뉴라이트 집단을 근간으로 하는 정권에서 녹(祿)을 먹고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를 물어보고 싶 었다. 지조(志操)를 중시했던 할아비의 뜻은 사라졌다고 폭언을 해도 시원치 않는 상황에서조차 ‘그’는 침묵했다. 그뿐만 아니다. 많은 독립운동의 후손들이, 또한 그 시대에 피해를 입었던 이의 자손, 그리고 지금도 그를 경계하는 사람들조차 친일정권의 탄생에 동조한 이가 많다. 알면서도 침묵했다.

흔히 이런 경우에는 ‘때를 기다린다 ’거나 ‘지금은 아니다 ’라는 류의 변명이 나오기 십상이지만 그걸 인정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일단 그는 반박했어야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그의 위치에 맞았던 일이다.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비겁했다.

오히려 그를 그 자리에 묶어둠으로써 ‘친일대세론 ’을 확장하는 정권이나 뉴라이트 집단(나는 이들을 ‘시대정신 ’이라고 바꾼 그들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도마뱀꼬리 자르기 전략을 인정해주는 꼴이 되는 탓이다)의 입지를 살리는 ‘어떤 기획 ’에 놀아나는 중으로 보인다. 안타깝지도 않다. ‘나도 생각이 있다 ’고 한다면, 그것은 청와대나 권력 기관이 할아비의 위명(威名)을 존중해서 자신을 불러주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잠깐의 안일에 안주한 것일 뿐이다. 효율적인 활용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달리 말해서 그는 활용 당하는 상태라는 거다.

일단 앞서 나온 ‘(친일) 사냥개 ’가 처리되지 않은 상태다 보니 ‘사냥꾼 ’의 위치에 있는 일본 내의 세력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가 ‘일본을 배우자 ’는 이른바 ‘(선진국) 열공 분위기 ’가 정권 내의 어지간한 사람들 머리 속에는 다 박혀있다. 그 점에서는 MB도 예외가 아니고, 그는 아예 드러내놓고 발언도 자주 한다. 다케나카 헤이죠 일본 전 총무처장관이 MB정권의 두 번째 외국인 경제고문이 되자마자 열풍처럼 불었던 ‘다케나카 배우기 ’(그러니까 ‘민영화 배우기 ’다)를 생각해보면,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몇 가지의 질문은 나온다. 한국 사회의 인지능력과 감성, 그리고 이성까지 테스트 해볼 수 있다.

“당신은 일본이 제국주의와 팽창주의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당신에게 일본은 배울 것이 많은 국가입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경계할 국가입니까?"

“당신의 실용주의는 일본의 어디까지를 수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

“당신은 일본을 떠난 한국, 한국을 떠난 일본이 각각 생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국 내의 친일이 자생적인가, 아니면 일본의 어떤 세력에 의해 길러진 것인가에 대해 당신의 판단은 무엇입니까? ”

이런 유형의 질문은 흔히 중도적 성향의 대답으로 흐르기 일쑤다. 그러니까 ‘배울 점도 있고 싫은 것도 있다 ’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일본경제에 심각한 예속화를 뿌리치지 못했다. 역대 어떤 정권도 딱 그 수준에서 ‘관리 ’만 했다. 벽을 넘어가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끔 일본이 관리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기서 묘한 의문 하나가 다시 제기된다.

“일본에서 한국을 그들의 족쇄에 오랫동안 묶어두려는 세력은 누구인가? ”

일본의 극우와 우익에 의한 사회 국가 전체의 우경화는 점입가경으로 간다. 좋은 일본인은 그들도 사람 사는 곳이니 존재하지만 이들은 결코 한국의 미래에 좋은 일본인, 좋은 일본 세력, 좋은 일본이라는 대상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만드는 ‘병리적 세포 ’에 해당한다. 이들은 힘이 있고, 이들에겐 목표가 있다. 그 목표는 이제 한국 사회 속에서 친일정권과 함께 ‘앞으로 백 년 ’을 설계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들이 포장하는 단어가 바로 ‘친한파 ’다. 이제는 그로도 부족했는지 진짜 극우와 우익의 숨은 세력들까지 기어 나온다. 강약을 조절하고자 하는 듯하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묻는다. 회색분자가 되려고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은 사냥꾼과 사냥개 모두가 절대적으로 바라는 ‘정답 ’이다. 한반도의 오늘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오답 ’이다.

2. 노예국민의 초상을 그린다.#

1% 독재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 4,500만 명 가운데 1%라면 약 45만 명이다. 그들이 금권을 가지고 사회 전 분야를 전횡(專橫)하는 걸 의미한다. 거기에 빌붙어서 사는 기득권(旣得權)이 형성되는 부류가 약 4% 추가된다. 약 180만 명이다. 그리고 다시 5%의 기득권의 유동계층이 존재한다. 이들의 자리는 수시로 바뀔 수 있다. 약 225만 명 상당이 그렇다.

나머지 90%의 국민 4,050만 명은 저 10% 가운데서 5%를 둔 피 터지는 계급싸움을 하거나 아니면 사회유지와 구성을 위한 일정한 계층으로 자리하게 된다. 경제라는 잣대로만 본다면, 일개미 군단이다. 이들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에서는 최상위 계층으로 도약을 위한 노력도 하게 된다. 그러나 쉽지 않다. 경쟁률은 18:1 수준이다. 높지 않게 보인다면, 그건 오산이다.

경제외적 측면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덕목과 분야도 있다. 그들에게도 의미는 부여된다. 권력이 아니지만 권력형으로 변화되는 경우도 생긴다. 지방의회니 혹은 서울시 교육감 같은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할거(割據)의 영역 내에서 다시 국민 전체에 해당하는 계급화가 진행된다. 금권은 다시 그 잣대로 사용된다.

교육 현장이 무너지면서 다음 세대에는 계층화 현상이 뚜렷해질 전망이지만, 지난 십 년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 외적인 분야에도 영향을 고스란히 미친 상태에서 친일정권이 들어와 이마저 친일화 교육의 전 단계를 설정하려고 하는 중이다. 여기서는 다시 ‘경제 ’가 역사의 잣대로 사용된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찬양기조는 당연하게 주장되는 바이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어떤 정치 유형이건 간에 경제발전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정권의 공과를 구분하자는 논쟁을 양산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기득권에 대한 유지 차원이라면, 이 정도 엄혹하게 처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지금껏 잘 해오지 않았 던가?

두 가지의 전제가 나온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한국이란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보지 못하는 꼴이다.

  • 첫째, 친일정권과 사냥개, 사냥꾼은 한국사회와 국가가 지난 60년 동안 유지해온 본질 자체를 드러내놓고 개편하고 앞으로 100년 동안 친일을 대세로 하는 집단을 구성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것이 바로 ‘다시 백 년 ’(又100)이라는 일본 프로그램의 진실이다.
  • 둘째, ‘다시 백 년 ’의 핵심은 단순한 병합 구도를 만든다거나 또는 형식적인 합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구도의 수립이라는 대전제를 둔다. 즉, 한국 내에서 다른 정치세력이 아닌 친일 정치세력으로만 유지되는 정치 형태와 이들과의 담합에 의한 한일이라는 외부적 표면적 국가 형식 과는 별개로 내부적으로 친일과 일본 내의 주도세력 간의 결합구도를 공고히 하자는 것이다. 겉과 속이 동시에 공략되는 방식이다.

사실상 이 두 축이 가동 중에 있다. 나머지는 이에 부속되는 것일 뿐이다. 아울러 그렇지 않은 것으로 포장된 실체일 뿐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1995년경부터 일본은 쿠나이쵸 (宮內廳)의 주도 하에 정권 내외부의 일본 극우와 우익분자들 간의 장기적인 생존 플랜을 가동했다. 그 상세한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십여 년 간의 추적을 통해서 이들의 기획 대강은 사실상 포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작성된 ‘시대시리즈 ’를 참조 바란다.) 그것을 보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우선 한반도에 대한 팽창주의 관점의 장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제 1 단계, 친일의 재구성. 제 2단계, 다시 백 년 구도의 완성. 제 3 단계 조선반도 전체에 대한 친일 구도 정착이었다.

제 1 단계는 다시 3가지로 나뉘어 진다.

  1. 친일찬양조의 구성
  2. 친일의 침투 확산
  3. 친일에 대한 재구성

제 2 단계의 경우는 4가지의 실천전략까지 있다.

  1. 친일정권의 수립
  2. 친일의 고착화 및 공고화
  3. 친일대세론의 미래화
  4. 친일구도의 완성

여기서 ‘미래화 ’가 바로 ‘교육 ’에 대한 부분이었고 구도의 완성은 곧 ‘한일경제동맹론 ’의 실천을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한반도의 남부에 위치한 대한민국에 대한 그들의 계획 진로였다. 이 부분을 11개의 침투방식으로 설명한 것이 시대시리즈다. 거기에 몇 가지 변형들이 최근 추가될 필요까지 생겼다. 내가 이것을 ‘침탈기획 ’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아울러 제 3 단계도 있다. 한반도 전역에 대해서도 그들은 놓치지 않는다. 바로 북한에 대한 침투작업이다. 일본의 기획자는 이러한 작업에 일본 내에 있는 조총련을 활용하고자 하지 않았다. 처음에 부분적인 포획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장악된 한국, 그러니까 한국 내의 친일분자(친일 사냥개)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상태다. 이 점은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정권에서 이 플랜은 줄곧 작동했고, 정권과 기득권의 담합에 의해 지속적으로 확장 진전되어 왔다. 한국 사회 내의 정치적인 보수 진보 논쟁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에 함몰되어 국민들 대다수가 몰지각했던 시간 동안 일본의 세력은 이 기획을 차근차근 진행 하였고, 아직도 그 실천 과정에 있다. 이 기간 동안 어떤 정치세력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간접이건 직접이건 간에 일본의 세력이 의도하는 바를 충실하게 집행해주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착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겉으로 외치는 ‘반일 ’이 곧 ‘친일 ’이 아니었다는 반론은 될 수 없다는 것은 과정과 결과가 증명을 한다. 그건 역사 정체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연대기에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할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친일 ’이었다는 사실이 부인되지 못한다. 그것을 당시 사정에 의해 어쩔 수없는 대세로 포장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러나 받아들이는 상태 자체는 정부수립 이후 처음이었던 것도 분명하며 그 방식도 창가학회를 받아들이는 등 가장 나쁜 선택이었다. 흔히 말하는 정치기득권은 항상 서커스 의 광대처럼 행동한다. 우매한 백성들이 그들을 따르지만 본질에 있어 그들은 기득권 유지와 수호라는 대전제를 버리지 않았다.

이 과정을 추진하며 (그들이) 진정으로 목표하는 바는 무엇일까?

일본의 침탈세력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것은 ‘팽창의 완성 ’으로 정의 내려진다. 즉, 압축해서 보자면, 일본이 한반도를 그들 팽창주의의 대상으로 보면서, 일정 수준의 내부적 관리를 위한 기득권은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경제적인 노예화 ’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 90% 국민이 비 기득권의 상태에서 일개미로 활용 가능한 상태가 일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계급화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바로 식민(植民)이라는 개념이다. 단순히 경제적 수탈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여기는 역사와 정치, 사회와 교육, 그리고 시대를 ‘포획 ’(捕獲)한다는 개념이 강하게 담겨있다. 애초 그것이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단지 그 표면적인 수단이 경제가 되었을 따름이다.

내가 일본의 세력들이 의도하는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한 이후, 지난 14년여 동안 일본은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에 접근해왔다. 그 중에서도 1997년 IMF사태는 한국 사회 에 그나마 최소한 유지되던 이른바 ‘사회 안전망 ’이 완전히 파괴되는 계기로 작용했었 고상대적으로 일본에게 있어 이것은 완벽한 기회의 획득이었 던 시기다. 그들은 이를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이 시점부터 ‘식민이 가능한 상태 ’를 만드는 노력은 줄곧 현장에서 이어졌고 2008년 오늘 세계금융위기 상황에서 일본 세력들은 드디어 ‘친일의 재구성 ’을 끝낸 상태에서 ‘다시 백 년 ’의 2-1, 2-2의 단계를 밟기 시작하는 중이다.

‘노예화 ’(奴隸化)라는 개념은 일종의 ‘일개미의 양산 ’구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것은 아주 빠르게 고착화된다. 다시 말해서 한 번 노예가 되고 난 이후에는 계급이탈이 용이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사냥개와 사냥꾼에 의해 주도되는 일반 국민 대다수에 대한 노예화 프로그램은 흔히 독재적 정권에서 나타나는 정보의 차단, 선전 선동의 강화, 중우화(衆愚化)내지 우민화(愚民化), 회색지대화 , 시도 때도 없는 공권력의 억지 활용과 같이 파워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는 시대만을 남겨놓는 것으로 가시화된다. 지금이 그러한 과정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작년 12월의 대선을 앞둔 논쟁들 중 가장 주목했어야 할 부분은 지난 십 년 넘게 강한 논 란의 대상이 되어왔고, 정부수립 이후에도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오던 좌파론, 우파론이 다시 제기 되었다는 사실이 다. 좀 더 세분화 해서 보면, ‘민주 평화 통일 개혁 ’이라는 네 가지, 사회가 본래 지향했던 정신적이거나 역사적인 목표가 ‘경제 ’또는 ‘경제 살리기 ’한 방에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 선택이 오히려 국민들의 노예화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이러니컬 하 다. 거기에 숨은 ‘친일 ’과 일본의 기획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노무현 정권 이 이러한 시대적 침탈행위 자체를 방어하지 못할 정도로 미숙했던 약점을 철저하게 활용하게 된 기회를 포착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는 정규직, 비정규직 논란 , 계층화 계급화로 부터 경제뿐 아니라 사회 자체가 예속화되는 한미FTA를 수용하는 가운데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국민 대다수가 ‘경제는 죽었다 ’고 인식하게 만들었던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착시현상을 벌어지게 한 데는 일본의 역할이 매우 컸다. 노무현 본인도 인정했지만 일본발 엔케리 자금이 2002~2007년까지 과도하게 한국 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을 효율적으로 억지하지 못한 대가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 ’로 이어졌고, 그것으로 국민들은 경제가 죽어버렸다고 인정했던 셈이니까. 공개적인 것 2조, 실제로는 거의 27조 엔으로 평가되는 당시로부터의 유입 자금은 한일 간의 원화/엔화 스왑거래나 주요 기업들의 일본으로부터의 자금 차용, 정부간의 이면 담합을 통한 국책 프로젝트의 가동, 공기업 민영화 선진화에 있어 일본 또는 일본계 자금의 접근 등을 통해서 한국 내에 공개 비공개로 한국을 전면 수탈하는 도구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게 그 다음으로 진행될 그림이다.

한국 경제 속의 국민 90%의 초상은 사냥개가 앞서고 사냥꾼이 뒤에 선 침탈상태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 거기에는 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에서도 영향을 받게 되는 모습이 아스라히 떠오른다. 한국은 이제 일본의 식민으로, 일본을 선진국의 표상으로 떠받드는, 그리고 도망갈래야 갈 수 없는 예속화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1945.9.9 오후 4시, 아베 노부유키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 이자 1945.9.9 미 제24군단 존 하지 중장과 7함대 사령관 킨 케이드 제독 앞에서 항복문서를 서명했던 아베 노부유키 (阿部信行) 의 발언을 잊어서는 안 될 시점이 되어 버렸다. 드러난 것만으로는 분명한 사실이 되고 있으니 .

“우리(일본)는 패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 데, 한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燦爛)했으며 찬영(燦榮)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 

무서울 정도로 ‘I’ll be back ’을 입술 깨물고 외쳤던 그가 정말 한반도로 돌아왔다.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가 말한 ‘식민 ’의 깃발을 들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그 깃발은 한국인의 얼굴을 한 몇 사람들에게도 들려있다. 그냥 들고 서 있는 게 아니라 마구 흔들어댄다. 그 숫자가 날로 늘어간다. 경악할 일이지만 이제 놀랍지도 않다. 뉴라이트 집단만 하더라도 벌써 17만명, 우리 인구의 0.4%다. 정말이지 한국이란 국가 사회 정체성에 ‘The day will be come ’을 외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3.  아시아와 한반도#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익히 예상된 사실이지만, 그의 등장으로 내년 초취임할 때까지 9월 터진 세계금융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식물이 된 부시 행정부의 기능보다 오바마의 말 한 마디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공화당에 의한 지난 8년 간의 경제정책은 민주당에 의한 강한 보호무역주의 성향으로, 그리고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지난 정권과는 다른 격변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도 영향이 적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커다란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까?

미국이 과연 국가로써 정책을 펴는 곳인가, 세력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곳인가에 있어 이제는 ‘세력 ’에 방점을 찍는 게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들 내부에 있어 세력은 다양하다. 그들에 의한 이권의 도모는 어느 정권 하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까지 보여진다. 무기와 제약, 축산의 카르텔로부터 금융과 연결되어 다양하게 세계의 농산물, 금속, 비철금속, 화약, 보석, 금 등 물자와 정보를 쥔 멘데이트 형식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상 미국을 지탱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골간이다.

거기에 미국-일본 간의 결탁이 있다. 당연히 미국-중국 간의 알력도 있고, 중국-일본 간의 협상과 담합이 존재한다. 한국은 친일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협상의 주체로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현상을 맛보고 있다. 여기에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향한 자화자찬은 불필요하다. 그것은 백성에 대한 기만 수준에 불과하니까. 정작 봐야 하는 것은 정말 대외에서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게 포장되는 예가 비일비재했다.

그러고 보면, 대표선수를 뽑긴 했지만 대화의 상대방으로 격을 유지하지 못하니 국민들도 딱 그 짝이 나버렸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는 대통령을 사이버 상에서는 우려의 눈길로 바라본다. 또 무슨 실수를 하고 뭘 넘겨주고 오는가 의심의 눈초리다. 그만큼 한국의 정권과 정부가 출범 이후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걸 도박사와 전주, 그리고 하우스 장(長)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전주는 도박사를 대표로 선정해서 한 판 도박판에 참여를 시켰지만 도박사는 전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도박사와도 결탁하고 하우스 장과도 담합을 해서 오히려 전주의 돈을 뽑아 먹을 궁리를 한다는 시나리오다. 그 하우스에는 대표가 여럿 있어 이사회를 개최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측에서 낸 도박사는 거기 끼지를 못한다. 그래서 항상 하우스 이사회의 결정에 휘둘리게 되어 있다. 이익은 그들끼리의 몫이 가장 크고 그 일부가 도박사에게는 오지만 정작 전주는 속절없이 털리고 나중에는 하우스에서 박카스를 파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게 성인용 동화다. 밖으로 새는 바가지이지만 안에서는 극구 새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기만이다.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미국의 각축이 더 짙어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

한반도에서도 북미 간의 출발점은 부시 행정부에 비해 오바마 집권은 긍정적 변수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그러나 한국의 친일정권은 사실상 남북관계를 단기 내 진전시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건 옆에서 아무리 좋게 이야기한다 해서 들을 문제가 아니다. 보수라는 관념적인 포지션이나 관점과도 다르다.

‘친일의 재구성 ’단계에서 ‘다시 백 년 ’으로 돌입하면서 가장 골치를 앓게 된 숙제가 바로 북한문제다. 엄밀히 이것은 ‘민족 ’, ‘민족문제 ’ 라는 테마에 속한다. 아무리 친일이라고 해도 일본과 동일 민족을 운운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경제 ’라는 결합 변수를 가지고 논의될 수 있을 뿐, 그 어떠한 과제로도 서로가 담합이 가능한 요소가 없다. 그럴만한 기초 환경 자체가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민족문제 자체를 친일정권이 다루게 되는 순간, 사냥개와 사냥꾼 둘 다가 명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극력 하는 척 자꾸 지연시키고, 사안 자체를 배척하는 국면으로 몰고 가는 본질적 이유에 해당한다. 그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부시 행정부는 일본의 이러한 의도를 알고 있었고 철저하게 그것을 활용했다. 새로운 미국 민주당 정권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변수 도등장했다. 개인적 예상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미일 간의 담합구도는 어떤 정책적인 방향이나 이념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란 국가가 아시아에서 한 축으로 반드시 견지해야 할 대상이라는 국가전략 차원에서부터 경제적인 결합, 그리고 각각 국가를 주도해 나가는 세력간의 거래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 틀이 쉽게 부숴지지 않는다.

(호랑이처럼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아무래도 이건 마음 속에만 있지 겉으로는 드러나지 못하는 환상 같은 것, 그저 바라는 소망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한국을 보는 미국의 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미 미국은 한국의 정권이 친일이며, 아울러 일본의 세력에 의해 조종되고 내밀한 담합이 있으며, 거래관계가 있다는 것조차 용인한 상태다. 그걸 뒤바꿀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미국과 미국 내세력의 이익에 합치되기 때문이다.

단지, 변수로 등장하게 된 것이 대북문제라는 것인데, 이것도 미국의 일본에 대한 일방적 무시보다는 일본의 입장이나 불이익 을최대한 미국이 커버해주는 방식이 될 것으로 봐야 한다. 그만한 카드는 일본이 가지고 있다. 경제적이건 로비이건 간에 미일 관계는 그런 요소가 너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은? 쉽지가 않다. 일일 이챙겨줄 입장이 아니란 건 부시 행정부 때도 본 일이다. 북미간의 대화를 한국이 모두 들었던가? 어떤 외교관료도 이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전 협의했다 ’는 말은 개략적 내용을 통지 받은 수준으로 평가하고 만다. 상세한 미주알 고주알 하는 공조가 아닌 셈이다.

이유가 선명하다. 북한이 보는 남한의 오늘도 정권의 친일성향을 파악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진정성이 없다는 건 지난 반 년 넘도록 봐온 사실이다. 그래서 통미봉남이 사용되었고, 7월 금강산 피격사건 이후 이렇다 할 당국간 회담마저 개최될 조짐이 없다. 단지 다자협상인 6자 회담만이 유일한 창구가 되고 있지만 이것은 북핵이라는 처리 대상물이 뚜렷하다. 쌍무적 관계는 아니다.

여야에서 대북 특사론이 나오지만, 이것은 일종의 ‘치레 ’에 해당한다. 친일의 재구성을 어렵게 끝내고 정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아직은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인식이 있는 친일정권이나 일본의 세력들 관점에서 대북문제는 지금 펼칠 수가 없는 소재다.

10월 테러지원국을 해제하면서 미국은 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접근했다. 어차피 민주당은 대화와 협상이라는 관점에서 강하게 북미관계를 강화해 나갈 판단이 있었다고 보면 부시의 결정은 한 발 앞서 미리 해버린 케이스라고 봐야 된다.

중국은 2009년 을중북 우호의 해로 설정한 상태에서 대규모의 인적교류를 준비 중에 있다. 정보가 빠른 중국도 한국이 친일정권이며, 대북관계를 쉽게 폭넓게 벌이지 못한다는 수준은 이미 파악한 지 오래다.

9월 김정일 와병설을 흘리면서 남북한이 냉랭해진 분위기에 빠진 것은 차치하고, 그 또한 북한 흔들기라는 화평연변 전략이었다는 것이 우익대북단체와 종교단체의 삐라 살포를 말리지 않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 목적한 바로만 고려하면 확실히 아마추어 의 행동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남북한이라는 역사성이나 미래성을 본다면 이것은 그저 꼼수 로 평가되기 딱 좋 다.

상황만 놓고 봐서는 한국의 친일정권은 당연히 자신들이 해나갈 스탠스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고, 미국이나 중국은 이걸 굳이 탓할 필요도 없이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적절한 레버리지를 구사한다고 봐야 한다.

일본이 약간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구원자는 항상 미국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도 중유지원 자체를 6자에 참가하지 않는 다른 나라의 것을 받아주겠다는 북한의 태도로 사실상 일본의 부담이 대폭 줄게 되었다. 그렇다고 북일관계가 일시에 좋아질 일은 없다. 일본도 현재 한국의 친일정권과 동일한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통미봉남, 통미봉일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북한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일본의 세력과 한국의 친일 세력의 계륵(鷄肋) 상황에서 드러난 실재이다.

거꾸로 이런 상황을 북한이 알면서도 일본을 배척하지 않는 것이 남한에 대한 친일화를 묵인한다는 것으로 비판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와병설, 정쟁설 등으로 뒤숭숭하기는 하지만 북한의 태도는 비록 6자 배제론 등을 흘리면서 일본을 압박한다손 치더라도 전체적으로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진출권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찌 생각해보면, 거기까지 돌볼 공간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도 보여진다. 워낙 경제가 엉망진창이 된 채 90년대 와 그 이후를 보냈다는 판단에서 보자면 그렇다.

그러나 이것으로 결코 북한의 책임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동조(同調)와 묵인(默認) ’이라는 관점 때문이다. 이렇게 하고서 그들이 일본을 향해 ‘독도 ’를 운운한다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일본의 침탈 구조 자체를 알고서도 대응하지 않는 것은 북한이 정권수립 이후 일관되게 주장해온 민족존엄이라거나 혹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궤를 달리하는 전략으로 비춰지고, 심지어는 개념이 아니라 실리라는 관점으로 대일 정책을 바꾸었다는 비판 혹은 능력의 한계를 표명했다는 수준으로 비웃음을 사도 무방한 요소도 생긴다. 여기에서 사실상 ‘우리민족끼리 ’의 진정은 사라지니까.

북한의 오늘은 미국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다른 문제를 생각할 틈도 없다. 그 고깔은 벗겼지만, 필요하다면 미국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의 친일화라는 과제는 후순위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만일 그들이 남한에서 완벽한 친일정권과 일본 세력의 구축이 끝난 상태에서 대화를 재개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말하는 실리주의라는 것이 그러한 것이었다는 것으로, 실제로 겉으로 내걸었던 ‘민족본위 ’라는 것은 구실일 뿐이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도 무방할 지 모른다. 진정성은 그로부터 완벽하게 사라지게 된다. 남북관계가 잘 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이런 문제까지 등장한다는 것이 불행한 형세다.

아시아는 미 대선 이후 내년부터 격변의 형세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변화의 궤도에 접어들었다. 확실한 변곡점은 서서히 드러날 것이지만, 내년 하반기 이후 본격적으로 한반도는 출렁이는 국면을 드러낼 것으로 예측된다.

그래서 일본의 세력과 한국의 친일정권은 몹시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 때는 자신들도 그 변화에 편승하고자 한다. 과연 그것이 의도대로 될 것인가는 차치하고, 친일의 재구성마저 끝나고 그 다음 단계로 가고 있는 한국이란 사회 국가의 운명은 한반도의 향후 10년을 매우 안타깝게 도 안정이 아닌 불안정하게 만들 소지가 더 깊어지게 하는 시점이다. 그 실패가 ‘다시 백 년 ’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막연한 상상이나 희망 , 혹은 상식적인 판단 이 위험한 이유다.

4. 정치는 죽었다.#

한국에서 지금 ‘정치 ’(政治)는 일단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도리 ’라는 정치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었다. 그것이 올바로 가건 아니건 벌거벗겨져 시체 침대(屍臺)에 놓여진 상태와도 같다. 이건 올바른 한 국가 와 사회 의 정치가 도저히 성립될 수가 없게 구성되어 버렸다. 정체성이 죽어 버렸다.

친일이란 요소가 들어오면서 ‘정치계 ’와 ‘정치세력 ’이라는 단어는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력 ’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한국이란 사회 국가의 본래적인 정치 자체를 망가뜨리는 한 수를 두었다.

작년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는 정치를 했다기 보다는 차라리 뉴라이트 집단의 간택(揀擇)이 어딘가를 두고 다툰 형국이었고, 그 점에서는 열린우리당의 해체, 민주당의 탄생 과정에서도 손학규-정동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김대중-노무현 간의 대리전의 양상을 떠나 정통성 을 포장한 세력화와 그에 반발하는 별동부대 간의 혈투라고 표현했던 것이 옳을 정도로 국민에게는 그저 세력다툼 수준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비춰졌다. 국익이 아닌 세력을 위한 정치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싸움에서 종합적으로 완전하게 ‘친일 ’이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영향 력을 미치는 범위는 점차 넓어진다. 정치계를 장악한 정치세력으로 스스로를 ‘집권자 ’(執權者)라고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을 정권이 수용하고 있다. 즉, 정치가 굴복하면서 정권이 컨트롤 가 능한정부와 민간 부문 까지도 확산일로를 걷는다는 의미다. 아주 강력한 세포분열이 이루어진다.

이들이 단순하게 행정부 차원을 넘어서 입법부, 나아가 사법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가운데 상당수의 숫자를 자신의 세력 우산 아래 포획한 것은 물론이며, 국회라는 기관 속에서도 심지어는 일반 기업에까지 영향변수를 미칠 수 있는 틀을 갖추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것이 바로 지난 반 년의 기록이다.

건설사의 줄도산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정책을 선택하면서 건설사는 이제 A, B, C, D 네 등급의 분류를 하여 지원 받게 되어 있다. 그들이 이곳으로 침투되는 것 도시간 문제다.

당연히 정치세력이 들어가서 경제를 주관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는 파장이 남는다. 이건 어떤 경제이론으로도 분석되거나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것은 야합(野合)이라는 속성을 지니면서 확대발전 되어갈 것으로 보여지고, 마침내는 원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친일 ’을 목적으로 움직이면서 한국의 정치계 자체를 무용화시키 거나 그들 내부로 포획하 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뉴라이트 집단의 창설 3주년 기념식은 그 좋은 예에 속한다. 그 행사에서 정치는 정치세력에 포획이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좋았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이것은 정치 자체를 무시하고 정치세력으로 정치를 이끄는 일종의 위헌적이며 반역 행위에 해당하지만, 제지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들이 ‘친일 ’을 암묵적으로 방관 또는 수용하고 있고, 그 전선에 대응하지 않는 현상 때문이다. 이것은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고, 또한 무관심과 개인주의 속성에 의한 묵인구도가 형성 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 활개친다. 적당하게 물타기도 하면서 그들의 입지를 다진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국민의 일정수준이 동조하고 있다는 판단, 그리고 금권에 접근 가능한 세력화를 추구하거나 개별적 이익 차원에서 친일을 수용 가능한 개인과 집단이 늘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들 스스로도 강하게 각인시키는 중이다. 자신감의 발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속한 한강의 하중도[河中島 ], 거기 있는 정치가 모든 정치인가? 정치세력과 민초의 정치가 충돌한다. 대의민주주의 본래의 뜻은 이 건물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단지 하나의 기표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는 착각을 하고 민심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이들 자체가 친일세력이지만, 이들이 목표로 하는 범위가 단순하게 친일의 확산이 아니라 경제와 결합하면서 부작용도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대운하, 해저터널은 하나의 지표라고 볼 수 있 고, 메인스트리트의 경기불황 가운데서 기업들의 줄도산 환경이 이어지고, 나아가 공기업의 민영화 선진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걸쳐 정치세력이 주도한 경제비리는 날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는 중이 다

그렇다면 정치계는 왜 이토록 자신들의 영역을 침해 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까? 정말 그 영역은 완전히 침범 당한 것일까?

정권 초기 구도에서 한국 내의 친일세력은 지표를 설정하기 바빴다. 그것은 ‘친일의 재구성-친일정권의 수립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단순히 친일이 아니라 ‘역사의 재평가 ’라는 과제와 맞물리면서 그들 개개인의 각자 이익을 누리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아울러 보수와 진보라는 관점을 제기하면서 지난 십 년의 정치세력을 무용화시키는 목표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선 순위로 인식되었고, 그 과정에서 친일세력의 활동을 통한 소위 ‘좌파론 ’의 제기가 도움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정적인 것은 바로 그들 내부의 기획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세력의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움직이는 상태에서 다양한 논의 자체가 나올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세 가지의 큰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 첫째, 경제살리기 코드는 경제위기에서 일본을 끌어들이는 환경조성으로 변질된다.
  • 둘째, 근현대사 재평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정부 연대기에서 기존의 정치세력을 포함한 정당성의 부여로 몰입되고, 이에 역사교과서 재편으로 방향을 몰게 된다. 여기에는 단순히 역사뿐만 아니라 경제관념의 변형, 그리고 대북 적대화 개념의 확대 양산으로부터 좌파론 , 좌파 배척론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 셋째, 언론과 여론의 장악구도다. 이것이 완성되지 않고서는 그들의 공통이익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이 부분은 공략되었다. 공권력이 동원되기도 하고, 마타도어, 메카시즘 , 회유와 담합, 자기 사람심기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은 실제 시행되었다.

이것은 막무가내의 ‘밀어붙이기 ’국면이었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 대화와 타협, 조정과 발전이라는 정치의 기본적인 소양은 불필요했고, 당연히 정치계는 이들의 움직임을 멀뚱히 지켜보거나 혹은 그 세력 속으로 자신들이 편입되는 것을 거꾸로 원하는 우스운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자발적으로 희망된 포획은 그들이 선거라는 형식의 ‘미약하기 그지없는 표심으로 만든 ’촛농 같은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 과정 가운데서 한국의 정치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간에 모두 정치 본래의 역량을 펼칠 아무런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굴러왔다. 지금도 이것이 일거에 개선될 여지는 없다. 아직도 일본 세력의 기획은 ‘진행 중’이라는 팻말을 붙인 상태이므로, 그 사이 정치계가 나름대로 본래의 자리에 올 가능성은 없다고까지 봐야 한다.

그 기간은?

적어도 2010년이 되는 해까지, 그러니까 현 정권의 임기가 절반을 넘어가지 않는 상태에서는 정치계 자체에 기 대할 구석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 사이 벌어질 다양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이미 규정된 바처럼 친일정권이 갈 수 있는 방향이나 친일의 사냥개로 움직이는 친일 정치세력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지고, 그에 대응하는 세력들과도 격렬한 다툼이 있게 될 공산이 크다.

이 가운데서도 정치가 살아날 공간은 인터넷 환경이라는 유일한 곳이 있지만 이마저도 조만간 봉쇄될 국면에 와있다. 심지어는 관급에서 투입된 ‘알바 ’에 의한 여론공작이 너무 치열하게 그리고 빤히 보이게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데, 이것은 토론이란 형식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보면, 한 편의 코미디보다 못한 광경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엉터리 작업은 인터넷을 통제하겠다는 목적 하에 마구 진행 중이다. 실명제를 통한 접근은 차치하고 정부기관의 공무원들이 일반의 포탈 접속을 금지하는 형태까지 10월 1일부터 광범위하게 시행되었고 보면, 일단 한국의 친일정권이 ‘진실의 확대 양산 보급 ’에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이는가를 엿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조급증이 드러난 셈이다. 그들은 이를 ‘루머 ’로 취급한다. 결국 빈대 잡으러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빈대가 무서우니 초가삼간을 태워야겠다는 식으로 접근한 셈이 된다.

정치의 언어들도 엇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국민이 공감하는가 아닌가를 따지지 않고 국민과의 대화라는 루즈벨트 노변정담 식의 대통령 라디오 연설이 등장하는가 하면, 여전히 청와대는 국민 여론과는 동떨어진 소견을 발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단히 일방적이다. 국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이미 국민대표로의 기능을 완전히 잃은 채, 친일 정권수호와 친일의 가치유지, 그리고 그에 반하는 모든 세력을 좌파로 몰기에 급급해 있다. 이 또한 뭔가 조급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토록 많은 초선의원들 가운데서도 제대로 당파정치를 벗어난 인물이 보이질 않는다. 공천이란 과정이 곧 친일심사였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정치계가 죽은 상태에서 정권은 청와대와 친일세력이라는 정치세력의 손에서 거의 대부분의 결정이 내려지는 현상을 보인다. 기형적이다.

더군다나 공권력을 이용한 이러한 스탠스 자체의 강력한 유지를 희망하면서 경찰, 검찰, 법무부를 넘어서 감사원까지도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게 되는 모양이 번지는 추세다. 권력이 어떤 용도로 군림(君臨)을 선택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30%라는 지지율을 여론조사 기관을 통해 만들어 낸다. 통계는 조작되었는가, 아닌가? 아무도 알 도리가 없다. 그에 대한 신용도는 전혀 재검토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의 적절한 지지도, 그것으로 이 작업은 무조건 추진된다.

이에 저항하는 민심은 미약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은 이미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극대화되는 추세로 접어들었다. 어떤 이의 표현처럼 ‘(총알이) 빈 총으로 쏘면 뭐하나! ’는 식이 된다. 지독한 냉소(冷笑)다. 대응과 저항이라는 수단 보다는 ‘무시(無視)와 조소(嘲笑) ’를 선택하지만 이 또한 공권력 플러스 관변 언론에 의해 외부로 발현되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강하게 포획되는 양상도 나타난다.

대의민주주의와 집권세력에 의한 개념적 정치가 아니라 정권의 속성에 의한 흐름이 자리했다. 그것이 바로 ‘친일의 재구성 ’을 넘어서는 ‘친일의 완성 ’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록 보수적 관점을 통한 ‘잃어버린 십 년의 청산 ’이라는 구실이 있지만, 그보다는 저변의 속성을 드러내놓고 펼치기 위한 의도를 감추지도 않는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으로 끝난 미 대선의 결과에 유별 난극우파 지식인으로 불리 다가 ‘컬트 친일 ’로 깊숙하게 빠진 조갑제의 거의 발작에 가까운 변명도 사람들에게 비웃음꺼리가 되었다. 그는 훼절도 아니거 니와 신념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최근에는 언론인이 아니라 거의 개그맨 취급을 받는다. 역시 정치와 정치계보다는 정치세력을 위주로 한 정권이 유지된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에 속한다.

5. 대한민국의 그림자 정부#

김진홍이 다시 ‘대운하 필요론 ’을 들고 나왔다. 전날 11월 4일 추부길은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 GD P의 30%가 건설 업을 통한 것이라면서 대운하의 당위를 역설하려고 했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2007년 기준 실질부가가치 기준으로 따진다면 총 부가가치 798조 중 건설업은 52조, GDP 대비 건설업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그걸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대운하 관련주들의 주가 상승현상도 나타난다. 소식이 빠른 자들의 입을 통해서 대운하가 현 국제경제 위기로 인해 초래된 경제침체를 해소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도 번진다. 버락 오바마가 루즈벨트 식 건설경기 부양을 할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루머도 퍼진다. 자기 이익이 걸린 대목에서 시장은 아주 과민하게 반응한다. 정권의 행태를 믿는 측에서는 이걸 기회로 보는 사람, 기업들 그리고 투기꾼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이 라는 하나의 사회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주체 가 아닌 현재의 정권을 지탱하는 몇 개의 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중이다. 앞서 지적된 정치세력이 정치 그 자체를 앞서가며 리드하면서 생겨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실상 숨겨져 있거나 아니거나 간에 정권의 본질이라는 걸 명백하게 보여주는 상태다. 그 현상들을 개략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첫째, 정권의 본질은 친일이며, 친일 세력의 온상은 일단 뉴라이트 집단으로부터 출발되고 있다. 그들이 바로 ‘친일정치세력 ’이자 곧 ‘친일매국세력 ’에 해당한다. 기준점은 여기로부터 두어야만 한다. 이들이 정치세력이면서도 이권세력이며, 침탈의 기본 앞장을 서는 사적 이익에 목마른 자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둘째, 기독교 보수단체, 기업형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결집한 종교를 포장하고 내세우는 개별이익 집단이 뉴라이트와 결합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에게도 이익이 있다. 금권은 항상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라는 의미다.
  • 셋째, 정치집단이 이러한 움직임을 자신들의 정치배경이나 혹은 정치적 후원자가 아닌 동일한 노선으로 착각하거나 무작위 수용하는 상황이 깊어진다. 그 점은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는 뉴라이트를 자신들의 홍위병으로 간주한다. 오히려 이들을 통해 ‘국민 ’의 범주를 ‘그들끼리 ’로 제한시키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편다. 이것이 이른바 ‘네트워킹 ’이다. 그러나 매우 제한적이며, 작위적인 구성을 한다. 거기에 전 국민이라는 요소는 없다. 즉, 민초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 넷째, 뉴라이트와 기업집단 간의 결합을 통해 경제집단과 대기업 중심의 친일화를 우익화로, 기존의 질서를 모두 좌편향화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기업은 자본주의 교육의 확산을 들먹이며 좌편향 교육의 문제점에 직접 개입코자 한다. 이미 기업이 아니라 정치세력이다. 이들이 경제위기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은 강력하다. 매우 포괄적인 이른바 ‘빨아들이기 ’가 성행을 할 것이다. 기업구조가 재편된다. 그러면서 그들을 다시 네트워킹화 한다.
  • 다섯째, 관치금융과 건설경기 부흥 등 일련의 경제개선 대책이 대운하, 해저터널 등 일련의 밀어붙이기를 위한 당위를 구성하기 위해 활용되는 흔적이 노골화된다. 그를 위한 금융 관련조직의 장악에 골몰한다. 필요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중이다. 은행 길들이기로부터 정치가 개입한 금융의 구조재편은 이루어진다. 한국은행마저도 이제는 관치금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과 재경부의 싸움과 갈등은 과거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추악하게 보일 정도다.
  • 여섯째, 서민경제의 침탈 현상을 방관하거나 혹은 무시하고, 중소기업 대책마련 보다는 기득권 층의 이익유지를 보장하는 수순을 선택하면서 향후 정책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들은 국가라는 요소에서는 ‘개미 ’로 취급된다. 더 이상 사회의 중추 운운하는 것은 입 발린 소리에 불과하다. 결국 기득권이 피기득권의 권리마저 강탈하지 않고는 성립하지 못한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 일곱째, 교육개편을 서두르는 중이다. 역사교과서의 개편에 대해 교과서 집필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려는 성향이 높아가고, 교육의 질을 거론하면서 중고등학교의 무한 경쟁을 유도하려고 한다. 당연히 교과 서의 좌편향을 지적하면서 친일요소의 당위인정을 시도하는 끈질긴 모색이 이어진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에게 교육에의 집착을 부른다. 의식화가 달리 의식의 주입이 아니라, 그들의 당위를 인정하라는 교육으로 발전하는 셈이다.
  • 여덟째, 민심의 저항을 억제하기 위한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중이다. 언론 방송의 장악은 물론이고, 이를 통하여 국민을 계몽차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시도를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강압적 사고주입과 회유, 그리고 압박과 수용에 대한 강요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민초의 나약함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이러한 사태는 이들이 단순하게 정치세력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성을 동반한 것임을 알려주는 확실한 징후 다. 사실상 정권 초반기부터 이러한 경향은 노골적으로 보였지만 경제적 위기라는 명분으로, 또한 이를 극복한다는 미명하에 민주주의적인 논쟁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움직임이 심각하게 진행된다.

누가 이러한 시도를 주도하는 것일까?

청와대는 이 모든 일의 주범(主犯)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요소를 뛰어 넘어 친일을 통한 사회장악의 지향점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만수 재경부 장관에 대한 교체요구가 한나라당이라는 여당 내에서조차 강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계속 거부한다. 벌써 몇 차례인지 모른다. 그러나 강경하게 거부한다. 이유가 있다. 그걸 곧이 들을 사람은 없다. 실패에 대한 인정여부가 아니다. 그것은 목적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정치적 결정의 맨 꼭대기는 청와대 와 친일정치세력이 라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와 목적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현되는 중이다.

그곳의 결정구도는 밖으로 알려지지 않지만 거의 일인주도형이라는 것은 여러 모로 드러난다. 즉, 형식적으로는 MB의 독단결정이라는 것이다. 그의 의사는 이동관 대변인을 통해 나오지만, 민심을 고려한 흔적은 크게 발견되지 않는다. 막무가내 밀어붙이기 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우둔함으 로가장한 것 같기도 할 정도다. 그러나 몹시 날카롭다. 들이대는 칼날의 예기(銳氣)가 만만치 않게 보인다.

정치계가 술렁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이 전형적인 ‘독재 ’의 유형으로 고착화되는 걸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반대의 말을 못한다. 즉, 여당 또한 여당의 기능을 하기 보다는 MB와 그 측근의 정치세력 가운데 하나로써만 극히 일부분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것이 한 사람의 고집만으로 구성되는 것일까 판단해볼 여유도 없다. 눈과 귀가 막힌 것도 아니며, 오히려 더 많이 열려 있다. 단지 듣고 보는 것을 제한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고 여겨진다. 철저한 인지부조화 상황이 이어진다.

묘한 사건 하나가 눈에 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10월11일 한일 경제인 제2차 비즈니스 서밋 라운드 테이블(BSR)에서 ‘한일해저터널을 뚫자 ’고 치고 나왔다. 그런데 그 명분이 조금 우스웠다. 그의 발언대로라면 ‘관광 ’이 그 목적이다.

“한일 양국간 관광 교류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방안이 필요하다 ”, “한일 해저터널이 앞으로 한중 해저터널과 연계된다면, 중국과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전체는 물론 향후 유럽과도 연결해 유라시아 대륙횡단의 대동맥이 완성될 수 있다. ”

예상한 바이긴 하지만 박삼구의 이 발언은 오래지 않아 청와대의 적극 검토로 이어졌다. 꼭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냄새를 풍겼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이것을 정책적인 박자 맞추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늘 이런 패턴은 존재했다.

일본에서는 수백 편 이상의 해저터널 논문이 지난 60~70년대부터 생산되었다. 일제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정작 한국은 이 관련 논문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통일 이전과 이후를 감안한 명쾌한 분석조차 없다. 즉, 미래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국가영토를 대상으로 한 논란이 이렇게 어이없이 벌어진 셈이다. 이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발전해 간다. 한국의 제1위 건설사인 대우건설을 가진 금호가 하겠다고 하고, 한화 등도 그에 참여할 기세다. 막을 자가 없다. 거기에 정권이 바로 바라는 바다. 10월 31일, 청와대도 검토하자는 이야기를 내뱉는다. 결국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골이다. 이미 먹물이 말랐다는 의미인가.

(한일해저터널, 일본은 이미 몇 십 년에 걸쳐 수백 편의 논문을 내놓을 정도로 집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학술적 검토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결정으로 갈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박삼구-청와대로 이어지는 ‘죽이 잘 맞는 ’한 수가 진행 중에 있다. 참고로 해저터널을 뚫기 위한 기술은 대부분 일본이 한국보다 몇 년에서 수십 년 앞서 있다. )

그런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과연 “나는 친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1935년 이후 일본의 애절한 숙원사업인 한일해저터널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박삼구는 당시 “조만간 일본의 도요타 본사를 가보고 싶다 ”며 도요다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의사를 도요다 조 후지오 회장에게 표명했고 그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이 발언을 두고 그 스스로도 멋쩍었는지 금호그룹은 ‘도요타의 선진 경영기법에서 경영아이디어를 얻겠다는 차원에서 이번 제의를 한 것으로 안다 ’는 사족 같은 해석까지 내놓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거꾸로 해석하자면 경영기법을 배우자는 뜻이 아니고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밝힌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난 9월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시장에서 유동성 위기를 둘러싼 위기감이 극대화 되고 있었다. 알짜배기 기업인 금호생명을 매각키로 했다고도 했었다. 오죽했으면 10월 3일 박회장이 직접 나서서 유동성 위기는 없다고 일축하기까지 했다. 금호는 대우건설 인수 시 과도한 풋백옵션으로 사실상 유동성 위기가 있다고 시장이 판정하였던 기업이다. 그런데 이 해저터널 발언 이후 금호에 위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친일 하겠다 ’고 총대를 멘 대가치고는 큰 것이었던 모양이다. 상대가 조 후지오, 즉 친일의 사냥개인 뉴라이트 집단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후원하는 도요다 회장이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그 이면을 짐작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2002년 7월 폐암으로 사망한 그의 형 박정구 회장은 민족주의자 그룹에 속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의’(義)를 중시하는 경영을 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외형만 부풀리는 거대기업보다 의로서 기업윤리를 철저히 지키며 사회에 봉사하는 알찬 기업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라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힌 적도 있다. 국민, 기업, 정부, 학계, 언론계 등이 5위 1체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뒤를 이은 동생 박회장이 그룹의 경영위기 상황에서 선택한 길이 ‘친일의 선봉 ’이 되었다는 사실이 눈물겹다. 민족주의자와는 아예 거리가 먼 장사치의 한 수였다고 평가되어도 무방하다. 영혼을 팔아버린 장사꾼 말이다.

대우건설은 작년 금호로 인수되기 전에 북한과 해주만의 조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호에 인수되고 난 이후, 이 논의 자체는 진행 되는 중에 중단되었다. 작년 대선 이후의 일이다. 당시 금호라는 그룹이 가진 대북사업에 대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한의 예가 있었다. 어렵게 입수했지만, 아래의 초청장은 하나의 ‘현실 ’을 엿볼 수 있다. 즉, 그들은 아직도 북한의 공식명칭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박정구 선대 회장 생각이 난 것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이라는 회사가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기업 본래의 의미를 살리는 것보다는 철저하게 생존일로를 걷게 되며, 그 중에서도 친일을 수용하는 것도 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경제협력과는 다르다. 괜시리 국제화를 운운하는 비난과 다른 이유기도 하다. 의식의 기본, 한국에서 민족기업이라는 말은 이제 버려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란 북한의 공식국호를 ‘조선인민주의공화국 ’으로 표기했다. 이 레터는 폐기되었 는지 모르 지만, 그 자료로는 남았다. 금호는 이 사업을 추진하려다가 작년 대선의 결과가 나오자 마자 슬그머니 중단했다. 정치적으로 강한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 프로젝트는 프라임 그룹이 먼저 시작을 했었다고 알려진다. 그룹 내 팀을 두고 시화호 조력발전소에 설계시공에 참여하는 그룹 산하 ㈜삼안, 프라임건설 등이 이 사업을 주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또한 대선 이후 사업을 포기했다. 두 그룹 다 호남기업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정동영에게 대단히 신경을 기울였을 것이지만,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새로운 정권과 줄을 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프라임그룹은 김대중 정권부터 사세를 확장했었다. 금호그룹과 함께 규모는 차이 나지만 호남의 양대그룹이라고 불릴만 했다 고 평가한다 . 그러나 11월 4일 그룹의 백종헌 회장은 전 국세청장 이주성에게 싯가 19억 상당의 아파트를 대우건설 인수 뇌물로 공여했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 되었다. 금호와 프라임은 서로 엇비슷하게 경영을 이끌었다. 금호가 대우건설을 인수하자 프라임은 동아건설을 어럽게 산하에 두기도 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둘 간에는 묘한 경쟁심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 었고 사업 확장의 패턴도 유사했 다. 둘 간은 실제광주출신의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2008년 한 사람은 인수에 실패했던 ‘대우건설 ’로 인해 구속되고 다른 한 사람은 무리했지만 인수에 성공한 ‘대우건설 ’을 앞세워 ‘친일 ’을 외치면서 살아나는 형세다. 한국에서 기업의 생존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아주 강하게 대비되는 둘의 모습이다.

과연 한국의 현 정권은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를 따져보면, 앞서 거론된 정치세력과 종교성으로 포장된 개별집단, 그리고 사적 이익을 위한 개인이 똘똘 뭉친 상태라는 것이 정설이다. 각기 결합되기 어렵게 보이는 이들이 어떤 연고를 통해서 이렇게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는가? 이것을 살펴보는 것이 실제 한국에 들어선 친일정치세력의 움직임과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동향과 변이방향을 살펴보는 데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그들 스스로는 이것을 ‘우파 네트워킹 ’이라고 부른다. 지난 십 년을 좌파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집단과 세력을 구성한다는 의미가 붙었다. 그런데 이 세력에는 묘한 기류 하나가 공통으로 흐른다. 그것은 바로 ‘친일 ’이다. 또한 자신들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좌파 ’로 몬다. 그들의 내부에 속하지 않는 모든 대상이 적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되는 것도 발견된다. 단순히 ‘뉴라이트 집단 대 반대세력 ’이라는 것이 아니다. 친 이명박 대 반 이명박이라는 구도도 존재한다. 물론 반 이명박이라는 관점에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친이계, 친박계, 중도계라는 기묘한 삼각편대도 있지만, 이들이 외부에서 기능하는 데는 친 이명박, 친 정권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그들은 아직까지 한 몸이고 여전히 그들에 저항하는 무리들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형세다.

공무원만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교육, 법조, 학술, 사회단체, 개인 등을 가릴 것 없이 친반 이명박이라는 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편가르기가 본격화되고 이를 통해 세력재편을 하는 양상 까지도 엿보인다. 그래서인지 뉴라이트는 ‘시대정신 ’이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바로 ‘뉴라이트=친일 ’이라는 정의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각인되는 상황을 살짝 피해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명목은 재정비다. 다시 뉴스타트하겠다는 것이니 언제나 ‘New ’는 붙는다. 이른바 ‘도마뱀 꼬리 자르기 ’수법이다.

이 세력을 홍위병으로 , “화합과 선진화를 위한 역할을 기대 ”(MB 뉴라이트 3주년 축사) 하는 것이 바로 정권이다. 바로 정치계가 기능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이고, 이를 감싸고 있는 것이 바로 청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정치세력이 현재 한국 정치의 중심축이 되어 있다 봐도 무방하다 . 이들은 거의 무소불위 하게 사회 국가 전반에 걸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기준이 간단명료하다는 점에서 이 세력을 일부의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이들이 차지하는 각 요소는 한국 사회의 중추를 이룬다. 즉, 정부, 기관, 산하단체, 기업 할 것 없이 광범위한 연대를 자랑한다.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또 그들끼리 뭉친다. 물론 일정 시점에서는 분열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로 겉보기와는 달리 노선 싸움이 아니라 이권과 세력을 둘러싼 내부투쟁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들끼리도 서로 다툴 요소가 나타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권 내의 기득권을 두고 나눠먹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그들이 지금 자신들을 ‘실세 ’라고 스스로 판정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이사항은 이들의 입에서 일본은 타도의 대상도 아니며, 그렇다고 멀리할 상대도 아니라고 본다는 것 은 아주 강하게 각인된 상태라는 점이다. 일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는 말을 자주 한다. 박회장의 경우는 (도요타로부터) 배운다는 걸 넘어서 아예 일본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목을 멘 숙원사업인 한일해저터널을 (관광 때문에) 하자고 나섰다. 뭔가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이런 차이를 잘 느끼질 못하는 모양이다.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최근 거제도와 경남 일원의 땅값이 오른다고 할 정도다. 예정된 터널 루트 A에 해당한다. 그 루머가 채 퍼지기도 전에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은 슬그머니 정계로 복귀했다. 한나라당의 브레인 집단이라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직책이다. 마치 지역과 정치 토호세력과 야합 같은 결합 을 하듯이 정권은 지난 정권과의 유대감을 이렇게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묘하게 이 시점에 건설 프로젝트이면서도 일본이 소망하는 해저터널과 직접 관련이 있 어보인다. 이게 친일인가, 아닌가?

이런 조절은 누구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지금으로써는 한국 내에서 결정자는 MB 본인이고, 기획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드러난 조정자는 있다. 이상득, 김진홍 같은 자들이다. 한일의원연맹까지 제대로 가동하게 되면 그 때 가서는 보일 지도 모른다. 이상득은 그 연맹의 의장 으로 선정되었고 조만간 일본에서도 취임식을 겸한 한일간의 미팅을 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상대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다. 아주 강력한 극우와 우익주의자기도 하며, ‘천황주의자 ’다.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해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시스템에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주장인가에 그 성격이 달린 것이니까. 일본 정치계의 ‘친한파=일제강점 옹호론자 ’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 자리는 이런 저런 일들을 모두 조정하는 계기가 될 거라는 것, 그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 한국에는 분명 정권의 그림자가 아니라 정권까지도 쥐락펴락하는 그림자 정부가 존재한다. 그들의 모습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그들의 속성이 사냥개이며, 당연히 사냥꾼이 존재한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배후는 일본 극우나 우익 수준이 아니라 더 큰 세력적 차원의 종합적인 기획이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조절자가 서울에 있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직간접인 정치, 경제, 사회적인 압박인 실질적 협박이나 회유 까지 당하는 기업이나 개인도 많게 보인다. 정권이 가진 힘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금은 아주 나쁜 본질을 지니고 있는 ‘친일 ’이 확실히 한국 사회의 대세로 자리잡 아 가 고 있다.

6. 小日本論#

‘일본식 ’이라는 보편적 일본의 특징과 그를 통 해 경제적으로 발전한 표면적 형세나 성과 측면에서 볼 때, 일본의 사회구조 유지의 현상은 언뜻 대단히 강점이 있다 고 평가된다 . 그들에게는 다테사회(縱社會)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현상과 기질이 있고, 그것을 관리하는 주체들 간에도 매우 조밀할 정도의 유대감을 유지한다. 이른바 오야붕 꼬붕 같은 일종의 위계질서다.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하부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보자면 꼭지점의 의사는 하부로 빠르게 전파되고 통일되는 양상이 있다.

그에 비해 한국사회는 약간 리버럴하다. 일사분란 한 맛은 군대라는 조직에서나 다른 여타의 조직문화에서 있기는 하지만 일본과 비교했을 때 는 어딘가 모르게 차이가 난다. 일본 이란 이미지와 가장 유사한 형태는 바로 독재권력 하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 다. 조직적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럴 지도 모르지만 유사점은 있다.

일본이 일왕을 중심으로 입헌군주 체제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전히 일본 사회를 세력으로 지배하는 군주제의 숨은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세력이 지배하는 구도는 일본의 복잡한 정치적 형세에도 불구하고 배후조정에 있어 매우 기능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거기다가 일본은 국가신도 체제 이후 신사(神社)라는 형식의 종교성을 띤 시스템이 일반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하나의 체제 와 틀 로 각인되어 있고, 그 정점에도 마찬가지로 일왕을 앞세운 세력이 있다. 이들이 사실상 일본을 암중 지배하는 구도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

(일본 국내의 의사결정 구도다. 여전히 일왕은 형식 속에서도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를 상징적 개념의 입헌군주라고 보는 각도에서는 ‘그’의 주변에서 이런 시스템을 관리한다고 판단들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보여지는 숱한 증거들이 있다. 오히려 이렇게 주축을 형성한 상태에서 횡적 결합의 장[場]이 여러 갈래로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극우와 우익, 그리고 전통적 제국주의 팽창주의 세력, 그 환경에서 성장한 기업, 개인 등이 모두 이러한 함수 속에서 연동된다. 여기에는 아주 강한 이면이 작동한다. 그것을 놓치는 것은 일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란 나라의 겉가죽만 훑어본 것이다. )

한국이 일본과 같은 형식을 띠지 않게 된 데는 먼저 1945~1948년간 미국에 의한 신탁통치기를 거치면서 일본식이 아닌 미국식의 사고가 혼합된 전례에서 찾아지기도 한다. 그 이후에도 일본의 잔재 로서의 기득권 문화라는 형식은 있었지만 사회 국가 전반에서 제대로 흡수 가능한 계기 까지는 형성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한국 국민성과 역사성, 정체성, 전통성이 차지하는 암묵적인 위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방 초기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몽양 여운형 등 다양하게 민초들에게 의식적인 민족주의를 심어준 정신적인 지도급의 인물들로부터 기인되는 것이기도 하다.

왜 독재라는 형식이 일본의 사회 시스템과 유사성을 가지게 되는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진다. 첫째, 피라미드 형 수직적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상명하복이라는 원칙, 기득권이 하나의 축으로 작용하면서 하부를 관리하는 체제가 구성된다는 의미다. 둘째, 이를 통하여 의사전달의 구도 자체를 간단명료하게 한다. 즉, 민주주의라는 개념에서는 다양한 횡적 교류와 집단 간의 의사교환을 통한 수정과 보완이라는 절차를 거치지만, 독재 하에서는 상급의 소수에 의한 결정이 곧 사회 전체의 집단의사로 적용된다.

이 유형과 시스템에서 기득권이 일본식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 상태에서 일본에 대한 막연한 동경(憧憬) 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부를 다스리는 상태에서 거칠 것이 없고, 또 전체를 이끌고 나간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이 강하다 못해 고착 관념으로 쉽게 뿌리를 내린다.

이런 사고는 ‘자유나 민주 ’라는 발상법을 시스템의 방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므로 개혁은 자신이 의도하는 방식이어야만 하고, 논쟁 속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소수에 의한 주도(主導)가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만든다. 전형적인 파워 엘리트주의지만, 이것은 지적 엘리트가 아닌 권력 엘리트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민주 ’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국에 들어선 친일정권은 이러한 경향에 함몰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베이스도 바로 ‘친일로부터 바라본 일본 ’이 있다.

우선 지도층이 선거라는 형식에 의해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피라미드 상부의 정점과 그 주변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다. 대의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정치인은 선출된 상태에서는 부여 받은 직위를 통해 그 위임권을 임의로 백퍼센트 행사 가능하다는 식이다. 거의 군주(君主)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대통령은 곧 왕권의 소재를 가진 듯 행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무위원의 최상급이 총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독재는 이 의식을 토대로 해서 국민을 계몽하거나 길잡이를 두더라도 다스릴 대상이라고 본다. 즉, 민주주의 자체를 선거를 진행 하는 상태에서만 인정하고 그 이후부터는 민주(民主) 는 옳으나 권리 행사 는 모두 이양된 상태로 가늠해버린다.

이것을 모순으로 인식하는 자기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독재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이 헌법적인 대의민주주 의로는 인정하나 위임권 의 소재가 결정되면 바로 주권이 넘어왔다고 인지하는 발상법이다. 그것이 MB의 최고경영자론(CEO론)이다. 단순히 회사의 경영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있고 그렇게 왜곡되게 의미가 덧보태지면서 변이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일단 그 논리나 혹은 어떠한 당위를 따지기 이전에 ‘저항 ’(抵抗) 으로 인식한다. 토론의 여지보다는 위임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는 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이것은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즉, 정권 또한 대통령과 여당이라는 형태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순간, 이것을 권한 위임의 범주에서 파악하고, 그 상태를 기준으로 집권을 실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이를 독재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능력에 대한 자기 인정이며, 나아가 상위에서 하위를 계몽하 고 이끄 는 것만이 자신의 본분이 며 권리 라고 본다. 그런 가운데 사적 이익이 개입되는 경우조차 당연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 정치에서 독재가 가진 독소적 현상이며 현 정권이 가진 특질이다.

이번 정권의 특이점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보태진다. 바로 정치계가 아닌 ‘정치세력 ’이 독재의 우위를 유지하는 홍위병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여타의 공적 정치세력과는 다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정치적 실체와는 다르게 이들은 선거에 기여한 측에 속하지만 정권에서는 이들이 실세가 된다.

이들이 대체적으로 거의 대부분 수용하고 배우는 시스템은 바로 ‘일본 ’이다. 이를 그들이 ‘친일 ’이라고 보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배움으로써 그들은 일본식 다테 사회를 만들어서 그를 통해 사회 국가를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했다. 그리고 사회 저변에 대한 장악이 바로 일본의 우경화와 같은 사회의 중추 트랜드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 구석도 있다.

이것을 그들은 ‘지난 십 년의 청산 ’이라고 부른다. 바로 우파적 관점의 잣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바로 ‘친일의 본색 ’에 해당되기도 한다. 좌파 우파의 구분도 아니며, 진보와 보수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단적으로 이것은 ‘친일 ’이며 ‘모방일본 ’의 범주에서 보는 게 타당하다.

지향하는 모델이 그 쪽이다 보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나타난 사회 현상이 과거와는 다른 형태이면서도 60~70년대 형 독재와 흡사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이 분위기는 개발연대의 독재에서 보았듯이 무엇인가 ‘기대 ’를 낳게 하기도 한다. 바로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본질이 많이 다르다는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끼게 된다.

그들 내부에서조차 이것을 모방하는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과거 ‘개발독재 ’의 유형이기도 하지만, 정작 다른 점은 일본을 단순한 협조자가 아닌 ‘배워야 하고 따라야 할 선진적 기법을 가지고, 또한 선진국이 된 국가라고 인식하는 ’상황이 나타났 고 이를 일정 수준에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끌어들인 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에서 당연히 반발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체성의 상실을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과도한 ‘친일행각 ’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어할 방법은 없다. 이미 그 수준으로 가자고 목표를 설정한 상태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이것에 반항하면 모두 선진화에 위배되며 방해꾼으로 사회 후진을 자초한다고 평가해 버리고, 그들을 ‘좌파 ’로 모는 수밖에는 없다. 이 또한 과거 친일세력들이 해왔던 ‘반공과 좌파, 빨갱이 논리 ’의 차용인 셈이다. 이에 다른 세력도 또 필요하다. 당연히 밀어붙이는 세력의 형성도 그 부류에서 이루어진다. 편가르기가 강하게 진행되고 ‘그들 과 그들끼리 ’외에는 모두 통제의 대상이 되어 버린 다.

이렇게 ‘따라 쟁이 ’가 되는 걸 두고 붙일 수 있는 별명이 ‘소일본(小日本)을 지향하는 정권 ’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정권이며 정치계, 정치세력이 판을 치는 것이 오늘 MB정권이라는 정의는 전혀 틀림이 없 다. 여기에는 ‘나를 따르라 ’는 이야기는 있지만 ‘따르지 않는 것은 부질없는 반항 ’이라는 첨언이 있게 된다. 즉, 아주 강력한 이분화의 구분법이 적용되고, 나아가 이것을 고착화시키는 것이 바로 사회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실제 인정하는 인식 도존재한다.

MB 인식의 첫 모순이 드러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그에게 일본은 언제나 선진 모델이며 국가 시스템이다. 그에게는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집단으로 일본의 세력을 흠모하는 마음도 엿보인다. 피라미드의 꼭지점이 저러니 그 주변과 친위세력들은 더욱 힘이 난다. 그들은 본디 사적 이익이었건 관념 자체가 그랬건 간에 친일의 사냥개였고, 친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 것을 받아 들이지 않거나 못하는 세력들을 경계 하고 처분 할 임무가 주어져있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공격도 전개한다. 옳다고 믿거나 혹은 그를 통해 얻게 되는 그들 개별적인 이익이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도 이렇게 얻는 것이 있다. 바로 금권이며 기득권이다.

그들 세력 내부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어떤 저항이나 반항에 있어 이들 은 스스로를 하나의 내부로 보고, 다른 쪽은 모두 외부로 생각해 버린다.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분산을 위해서 적절한 배분만 하면 그만이라는 판단도 있다. 동조하지 않는 국민은 모두 그들의 외부에 위치하는 존재이고, 그들의 내부로 들어온 세력만이 순수한 협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내부에 위치한 어떤 사람의 비판도 수용하지 않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진실한 보수주의자의 사회비판마저도 그들에게는 일고의 수용가치가 없다고 잘라버리는 단호함도 엿보인다.

여기서도 일본은 아주 강하게 그들의 위치매김을 지원하는 모델이 된다. 그래서 일본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고, 그를 따르고자 배우고자 한다는 이야기가 그토록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중에서 기존 한국이 가진 사회의 전통성과 정체성과 끊임없이 충돌을 벌이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일본에는 없는 분단역사 와 그에 파생되는 민족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쉽게 지울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고유(固有)한 형세로 자리하기 때문이지만, 시간이 아직도 그들이 의도하는 수준으로 흐르지 않 았거나 또는 그들의 방식이 완전히 먹히지 않아 현재까지는 제대로 희석 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교과서 파동은 대표적인 예다.

당연히 ‘통일 ’, 그 가운데서도 민족간의 통일이란 개념 은 반드시 논의에서 제거되어야 할 과제가 된다. 협의에 의해 진행되는 사안이 아니라 이것은 친일정권이 일본을 선진모델로 받아들이듯, 북한 또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현재의 모델과 형식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별개 대상이 될 뿐이다. 조건을 상정하여 배척하거나 또는 변화에 맞는 정책적 대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 내부의 형식과 맞지 않을 경우, 절대 인정하지 않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게 된다.

대화를 하자고 해도 이 틀은 바뀌지 않으므로 상대에게 그 책임을 묻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바뀌었는데 너희도 바뀌어야 대화한다 ’는 명제다. 거기에는 대화제의와 정권교체라는 두 개의 양립되기 어려운 카드가 버젓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북한이 일본을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지만 이제 그것이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현 정권은 일본의 극우와 우익이라는 세력을 모방한 정치세력이 재구성 되어 선출 한 기득권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위임권을 부여한 상태에서 시작된 국민에의 군림 은 타당하다는 관점의 통치 양태 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이것을 ‘소일본(小日本)의 타당성 ’으로 부르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7. 100년 집권정당을 꿈꾸며#

공화당-민정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박정희 이후의 계보를 보면, 이들이 보수세력이라는 이름보다는 기득권이라는 명칭이 타당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이승만 정권의 친일수용 및 반공강화로부터 정치군인 시대를 거치면서 ‘반공보수 ’는 하나의 맥(脈)을 이어오고 있고, 그 이면에는 ‘친일 ’이 고개를 반쯤은 내놓고 숨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드러나기 보다는 잠복해 있 는 쪽을 택했던 것은 국가 사회 내 유지되고 있던 ‘사회안전망 ’이 적어도 친일은 공개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꾸준히 민초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것은 매우 강력했다. 반독재와 민주 투쟁 속에서 의식화되고 각성한 일정한 세력들이 이를 뒷받침 했기에 장기간 유지가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변화할 조짐을 보이다가 IMF시대를 거치면서 마침내 ‘친일이 무슨 죄냐? ’라는 반문으로 터져 나오더니 이제는 그들 식의 공격 패턴인 ‘친일이 친북보다 낫다 ’는 형식을 갖추기에 이른다. 거기에 대의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고착 기조를 보인 개인주의와 결합해서 ‘경제살리기 ’라는 마술 (트릭) 에 걸려 들면서 마침내 친일정권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대통령 자리와 국회 의 다수의석 까지 모두 이들에게 고스란히 내어준 데는 친일보수언론들의 지원도 있었지만 사실상 야권의 이념과 가치유지의 실패 ,붕괴로 인한 것이 더 큰 몫을 차지한다. 단순한 착시현상이 아니라 실제 정치 자체가 빈곤한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확실히 보여준 판이 벌어졌다. 제어실패의 전형적 결과물이다. 이건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현상이다.

정치계가 붕괴되고 공개적으로 모습을 나타낸 ‘정치세력 ’은 확실히 ‘친일과 사적 이익(개별 이익) ’이라는 두 요소가 아주 강하게 결합했다. 기득권의 새로운 발전양상으로까지 보였다. 거기로부터 시너지를 얻기 위하여 공권력의 활용 극대화와 세력의 무한 확장을 진행 중이다. 물론 그 정치적 목표는 있다. 바로 장기적 집권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정치계를 통한 일정한 형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실제 꿈꾸는 것은 ‘그들 정치세력 ’을 통한 한국 사회 내의 장기적 세력장악이다. 그 점이 확연히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정치적 호불호가 아니라 지금은 전방위적인 세력화를 염두에 둔다.

언뜻 보기에 정치계는 계속 실패하는 듯 보인다. 여당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정권 초기에 악재가 겹쳐 제대로 못한 것이라는 자기 위안 이나 변명도 있다. 비난의 화살은 이어지지만 특별한 대책을 내놓기 보다는 어쩐 일인지 청와대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국회의 원 기능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가 봐도 안다. 가다가 멈추고, 때로는 청와대를 위한 물타기를 하거나 혹은 아예 정치세력의 뒤에서 맴돌기도 한다. 누가 정치를 하는 지 모르겠다는 말이 그래서 튀어 나온다.

당연히 여당을 보는 눈길은 다시 청와대로 돌아간다. 비판이 터져 나온다. ‘그’개인에게로 향하는 소리들이다.

국정철학과 비전이 없는 사람, 품격 유지가 어려운 단세포적 생각과 행동에 익숙한 임기응변 인간형, ‘컴도저 ’가 아니라 포크레인에만 익숙해진 건설꾼, 국가경영 과개인 종교의 믿음을 혼동하는 미숙아, 어설프게 흉내 내는 독재형 리더십 등의 비판이 가세를 한다. 이건 지난 8개월 여 상황을 종합해본 분석에 해당한다.

과연 그런가?

나는 여러 차례 이것이 매우 단수 높은 행위의 과정이라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특히 목표를 가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정치 계나 청와대 가 그렇다고 해서 ‘친일정치세력 ’의 기세가 꺾인 바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자신만만하게 사회 속에서 활갯짓을 치지 않는가.

사냥개의 특징은 변화에 기민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전후 좌우로 오가는 것은 목표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활동이다. 당연히 쟁취의 목적은 사냥감이다. 그러기 위한 페인팅 모션이나 적절하게 짖는 행위, 그리고 발 빠르게 위치를 선정해 나가는 순발력 등으로 사냥개의 등급이 매겨진다. 당연히 사냥꾼과의 호흡이 잘 맞는 훈련된 움직임이어야 한다. 지금 일선의 사냥개는 바로 ‘친일정치세력 ’이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행동양식에서 판단된 것이다. 그들은 때론 정치 속으로, 사회, 종교 안 으로도 숨어 버린다. 사회 전부가 그들의 은신처다.

하나의 간단한 시나리오를 이야기 해본다.

“2008년 한국 경제는 일단 해묵은 문제로부터 초기 정책의 실패, 국제금융위기의 엄습, 기득권 계층 수호의지 고수 등으로 인해 전면적으로 붕괴상황까지 직면했다. 경제살리기는 물 건너간 개념이 되었다. 외환유동성과 화폐유동성 자체가 엉망이 되었다. 서민경제와 중소기업은 침몰하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방법은 대운하, 한일해저터널뿐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늘어난다. 이것을 선택하는 것을 전제로 경제회복을 위한 외자의 유입이 개시된다. 그 과정에서 협조자 및 구세주로 등장하는 새롭거나 그렇지 않은 세력들이 있다. 그들끼리의 단합이 역량으로 표출된다. 단순한 원화와 외환 간의 통화스왑이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알짜 공기업 매각 등을 통해 자기들만의 정권 가용 자본이 형성되고 이를 어디론가 재 투입하는 방식이 진행된다. 경제는 2009년 말을 정점으로 2010년 지표상으로는 완만한 회복기조를 보인다. 2010년 한일해저터널 착공식으로부터 일왕의 한국방문 등이 이어지고, 미국과의 FTA도 미국의 새로운 민주당 정권과 지루한 밀고 당기기 끝에 상당한 양보 끝에 본격적으로 진행 물살을 타게 된다. 정권 중반기를 넘어가는 시점, 한국 경제는 표면적으로는 완만한 회복세 를 어떻게든 포장하고 이 에 힘입어 정치권에서도 개헌논의를 부각시킨다. 성공한 대통령, 정권의 위상 속에 물밑에서는 아주 강력한 사적 이익 집단 간의 담합이 벌어지지만 국민들은 그들이 어찌 하건 간에 경제가 살면 그만이라고 자위하고 만다. 한편으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노예근성이 확산된다. 친일정권은 성공했다. 그러므로 이제 친일은 대세가 된다. 친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동한다. ”

‘친일의 재구성 ’이라는 제 1 단계 전략 이후 제 2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친일의 고착화 및 공고화 ’, 그리고 ‘친일대세론의 미래화 ’는 이렇게 구축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그 다음은 ‘친일구도의 완성 ’이다.

청와대가 부인하기는 했지만 11월 11일 영국 더 타임즈의 보도는 명쾌한 방향을 제시한다.

“아키히토 일왕의 방문이 이와 유사한 사례(독일 브란트 전 총리의 경우처럼 사죄 이후 폴란드 방문)가 돼 한일 두 나라의 관계가 진정으로 전진 할 수 있을 것 ”으로 청와대는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청의사가 아니라 그렇게 하자는 의미다. 언제 오는가? 2010년이다.

이것은 개략적으로 본 것에 불과하다. 이를 위한 세부적인 현장기획은 지금도 꾸준히 세밀하게 벌어지는 중이다. 진행상태라는 의미다. 여러 부분에서 반발은 있지만 한국 국민성마저 고려되어 접근되는 이런 조밀한 기획 상태에서 이 구도를 국민들이 상식적 사고로는 빠져나가기 쉽지가 않다. 롤러코스트 국면에서 저항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효율적으로 제압하고 그 다음 단계로 가야만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걸 기획자는 잘 안다. 그를 위해서 준비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지금 드러나고 있지 않을 뿐이라는 전제에서 본다면, 이 시나리오는 일종의 기초가 되는 교본(敎本)이며,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그에 맞게 변형이 가능하다. 거기에 보편적 민심은 다시 착시현상과 몰지각한 수용 , 방관 을 하게 된다.

‘친일구도의 완성 ’에 주목해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성립할 경우 에도 오히려 쉽게 독재형 리더십을 펼치기 어려울 정도로 반발이 강하게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나라당이라는 친일정당일 경우는 다르다. 그들에게는 교활하다 할 정도의 목표지향성이 있다. 야당 내의 친일, 기득권을 흡수 가능한 여지가 있다. 엄격히 이들은 반공보수와 변색한 우파, 그리고 친일찬양파가 뒤범벅이 되어 있는 정치집단이며, 정치계 내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각개 약진이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들이 강하게 정치계가 아닌 ‘친일 정치세력 ’으로 결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오늘 한국에서 벌어지는 ‘친일 ’그 자체다. 그래서 정치가 죽는다.

여기서 다시 일본을 보게 된다.

그들이 겪었던 정치환경에 대한 벤치마킹이 한국에서 이루어진다. 본질적 기획 까지 일본발로 나온다고 보면, 그건 모방기획이라고까지 봐야 한다. 일본의 자민당은 1955년 이후 한 번도 정권을 잃어보지 않았다. 비록 내각중심제이긴 하지만, 그들이 이처럼 정치권력의 고착을 유지한 데는 나름 노하우가 있다. 바로 계보의 관리에 능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장(場)의 결합 ’이다. 이것을 한나라당은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친일정치세력은 더 열심히 그들의 이면 작업을 배우고 시행하게 된다.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면서 한편으로 사적 이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결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의 끈끈한 유착 구도도 마찬가지다. 본래 일본의 기업은 제국주의, 팽창주의를 통한 조선침략, 그리고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등을 통해서 본원적인 부를 축적한 집단이다. 이들은 정치계와 단단하게 결합해 있다. 당연히 우경화의 성향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 그 흐름이 한국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기업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려는 기미까지 보인다. 두 가지가 동원된다. 하나는 몰아내기 이고 다른 하나는 흡수 재편하기 다. 이를 통해서 그들의 편을 정확하게 가른다. 그 다음 수순은 바로 ‘투입 ’이다. 즉, 정치계와의 유대강화는 기본이고 거기에 친일 요소를 침투하는 중인 것이다. 과거와 가장 다른 점은 일정한 ‘수준 ’이 사라지고 막무가내 요구하는 양아치 식(이건 바로 야쿠자 식의 변형이라 할 수도 있다)이 친일정치세력에 의해 자행된다는 점이다. 그걸 그들은 ‘적절한 타협 ’이라고 한다.

한국기업은 친일과 친미라는 두 갈래 속에서 일정한 선택을 해왔고, 이들 둘 간의 관계유지도 했었지만 2000년 이후 친일도 하나의 커다란 대세로 급속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둘을 복합하는 형세로부터 친일로 기울어지는 유형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수구형 경제결합이고, 또한 경제독점구도의 강화라는 형식과 연결된다.

모든 면에서 일본을 ‘배우고 따라 하자! ’는 구호는 현실에서 그대로 이행되는 중이다. 이것이 ‘친일대세론의 미래화 ’라는 부분에 해당된다고 보여 진다. 증빙 가능한 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발견되는 네 개의 사회구성요소인 ‘당 정 군 민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형식이 발견되지 않는 곳이 없는 나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의 단순한 확산이 아니라 결합하고 변종을 양산한다. 이것은 회색지대를 양산하려는 것도 아니고, 실질적인 친일대세론을 고착화한 상태 그 이후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워낙 전방위로 들어오는 이 기획에 한국 사회 국가는 속수무책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친일에 젖어 들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위세에 눌리고 있다는 표현도 적절하다. 권력을 등에 업고 다시 그들이 정권의 중추로 위세를 떠는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환경은 쉽게 조성된다. 여전히 한국은 정치국가이지 경제를 위주로 한 나라는 아니다.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위세에 눌린 듯 보이지만 사실상은 이 흐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약간 균형감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절기능의 하나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이회창 시절의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은 차라리 현재에 비해 나은 측면까지 있다. 지금은 이회창과의 결별을 통해서 재구성된 새로운 ‘판’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러한 친일기조와 색깔, 그리고 청와대와의 어색한 관계설정, 나아가 당내외부의 ‘친일정치세력 ’과의 연동성으로 인하여 오늘의 한나라당은 그 색깔 자체가 과거와는 판이한 전혀 다른 변이를 하는 중으로 비춰진다.

물론 이런 유야무야 하는 모습에서 무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내에는 여전히 강력한 위세를 자랑하는 박근혜 계파가 존재하고, 초선을 중심으로 하는 소장파, 그리고 친이계와 중도계가 혼란스럽게 낡은 항공모함처럼 굴러가는 중이다. 비록 내각제는 하지 않았지만 한나라당 내부로만 본다면, 그들의 팽팽함이 오히려 외부의 친일 강화 에시간을 벌어주 는 역할을 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의 친일이건 혹은 선부(先父)에 대한 역사 재평가를 위한 몸낮춤이건 간에 그들의 행위에 동조하는 자세는 이들로 하여금 그녀를 ‘묶어 두었다 ’고 자위하게 만들었다. 친일을 제지할 내부적인 동력이 사라져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에게도 그들의 친일 자체를 부인하고 치고 나갈 만한 정치적 계기는 없었다. 오히려 이를 수용하고 관망한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때로는 그녀 또한 그 속으로 들어가서 지지를 구한다. 그들은 역시 막강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한다.

‘다시 백 년 ’은 일본의 기획이지만, 한나라당의 친일은 이를 자신들의 기획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는 중이다. 시나리오에 의거해서 그들이 나설 때가 있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 준비하고 시기를 노리는 것이 오늘 한나라당 내부에 형성된 ‘친일 ’정치계의 모습이다. 외곽의 친일정치세력과의 결합은 필연적인 것이다. 당연히 백 년 정당을 꿈꾸는 것이고, 아직 정권의 연대가 한참이나 남은 상태에서 굳이 서둘지 않으면서 입지를 유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상대적으로 야당이 기능을 못하고 있고, 자유선진당의 경우도 이회창 이후의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을 촉박하게 다 툴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이들은 어찌 보면 움츠린 채 잠복기를 거치는 상태라고 판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사이 박희태, 홍준표, 임태희, 나경원, 전여옥 등 이른바 뉴라이트의 일선이 앞서 나온다. 이들은 지금이 자신들의 때라 여기는 듯하다.

8. 386, 그 지독스런 오만과 모순#

김영삼은 계보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의민정당과 결합하면서 사실상 민주화 시대 자체를 단절했다. 그는 엄밀히 말하자면 공화당-민정당의 계보를 잇는 형식 속으로 들어가 자신마저 훼절한 대표적인 케이스에 속한다. 당연히 그에게는 4.19 혁명세대는 포용하더라도 386세대로 총칭되는 80년대 학생 운동권의 시각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90년대 한총련의 몰락으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와해공작이 모두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한국 사회 내의 신자유주의 기조를 만들어낸 IMF사태를 불러온 점 등에서 본다면, 그는 전형적인 수구 기득권을 위한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 이후의 행적도 별반 틀리지 않는다. 그는 어느 사이 신한국당의 대부가 되어 있다. 민정당으로부터 신한국당까지 이르는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연장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영삼의 과거 민주화 행적은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는 단계로 와 있다. 그는 이제 MB정권과도 결합했다. 그와 MB정권의 결합은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개별적 이익을 합치는 방식의 야합인 셈이다.

김대중의 경우, 그의 민주화 운동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측근정치를 통해 집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386세대의 중용을 희망하지 않았다. 당연히 386세대는 갈 곳이 없어지면서 80년대 후반으로부터 90년대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시민단체나 혹은 교수, 기업가 등으로 변신을 하게 되었고, 민주화 운동은 그로부터 의미를 잃게 되 었다. 이어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사회 내부의 개인주의 극대화를 가져오게 되 며 386들도 급속하게 그 안으로 재편되 었다.

그들이 정작 갈 곳을 찾은 것은 노무현의 탄핵 사태 이후, 소위 탄핵돌이(탄돌이)라고 불리는 386세대의 대거 국회입성에서 현실적인 모습 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기형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인 경륜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로 국회로 입성하여 정치현장에서 이들은 노련하면서도 강력한 친일보수우익 언론 등의 후원을 받는 한나라당과 계파정치 고수로 불리는 김대중, 김영삼 계열과의 갈등 과 분열 을 연신 빚었다. 물론 일정한 수준의 담합도 있었지만 형세는 항상 다분화 되는 양상을 구축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한국 정치계의 386 내부의 분열 형세에서 이들은 90년대부터 변절과 훼절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다. 단순히 대북문제 , 민족문제 에서 비롯된 연원이 아니다. 강철서신 같은 80년대 형 주체추종세력과는 달리, 90년대 이후 386 본래가 가진 사회 내부에서의 자리매김이 부실한 환경에서 능히 보신을 위해 벌어질 수 있는 훼절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고, 또한 그들을 수용하지 않는 정치집단에 대 한 반감 등으로 다른 방식의 사회성으로 변모하 면서 서서히 ‘친일 ’을 대세로 한 보수우익화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정치욕망 ’바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 더 집요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당, 열린우리당, 민노당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 그 가운데서도 386들의 활동은 기성 정치에서 약간 신선함을 줄 수준을 제외하고는 곳곳에서 장벽을 느끼게 된다. 노련함의 부족은 탄핵돌이들이 쉽게 기성정치의 룰을 이기려고 하거나 혹은 무시하는 태도로부터 결국 그들에게 끝내는 포획 당하는 상황까지 양산하게 되었다. 새로움과 차별화를 기대하던 국민들의 실망이 깊어지고 결국 이러한 조류 자체가 바로 ‘변화 ’(바꾸자)를 요구하는 민심과 결합하게 된 것이 작년 대선과 금년 총선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부의 생산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지를 못했다.

실패한 것이다.

거기다가 아주 커다란 혹을 달고 나왔다. 그 과정에서 훼절, 변절분자들을 대량으로 낳았고, 갈등이 폭도 아주 넓혔다. 이들은 기존의 386이 가진 모순을 지적하는 논리로 교묘하게 ‘우익 ’이라는 깃발을 든 친일의 사조(思潮)를 한국 사회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배후에는 기성 정치인이 아닌 정치세력이 존재했다. 당연히 그 배후에는 친일기업인과 일본의 극우, 우익을 중심으로 하는 후원세력, 그리고 숨겨진 기획자가 존재한다. 그에 개의할 여지도 없이 선택은 아주 빠른 속도로 ‘친일이라 하더라도 경제가 우선 ’이라는 논지로부터 ‘대한민국은 좌편향을 수정해야만 산다 ’는 기준점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좌편향=친북 ’이라는 공식 속에서 ‘반공(反共) ’이란 괴물을 다시 꺼내고, 거기에 덧칠을 ‘우익 ’으로 하면서 ‘친일찬양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도 형성 이었다.

(도봉갑, 김근태, 신지호. 아마 이 세 단어는 대한민국 역사가 있는 한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좋건 싫건 간에 말이다.)

신지호의 예를 들어보자. 촛불시위에 나온 유모차 어머니에게 막말을 할 정도로 , 반정부 시민단체 지원예산 중지 및 회수를 골자로 하는 입법을 발의할 정도로 그는 이미 정치 실세처럼 군다. 그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의 이런 변신은 조금 가소로운 일이지만, 그는 이미 그렇게 기성의 권력 을 맛보면서 젖어 가는 중이 다. 막 등장한 초선치고는 다선의 기성정치인의 뺨을 칠 기세다. 그런 그를 한나라당 의 다선들 은 제지하지 않는다. 활용가치도 있지만 그의 후원자는 바로 김진홍, 서경석 등이다. 뒷배가 있다.

그는 확실히 친일이다. 어느 정도 친일인가 하면, 그는 이미 수년 전 ‘일본과의 경제동맹을 체결해야 한다 ’고 주장할 정도까지 갔다. 그의 목적은 친일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바로 ‘기득권 ’이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일 수도,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를누가 후원했는가?

당연히 일본이다. 그는 90년대부터 직접 관리된 대상이었지만, 한국에서 ‘민주 ’를 내건 김근태를 이기고 서울 도봉갑 에서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다. 뉴타운 공약 하나로 김근태를 이긴 것만은 아니었다. 총선 당시 민심은 이른바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이라는 과정을 통해 양산된 기성 정치인 자체에 혐오증이 깔려 있었다. 적어도 지난 십 년간 보여준 것 , 발전적인 것 이 없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민심은 별로 없다.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생활로 접어들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민심이었다. 지금에 와서 친일정권의 독재적 성향에 치를 떠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 만 지금과 그 때의 민심이 판단한 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착시현상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로 돌아가보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민심을 탓할 바는 없다. 그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았던 당시의 정권과 정치계를 탓하는 게 옳다. 오히려 이를 후회하거나 비난 하는 것 자체가 이들과 대적할 세력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다. 그래서 드라이하게 봐야 한다는 거다. 잘못과 구분을 하지 않고,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도 하지 않고 무조건 국민이 어리석었다는 식의 접근법에 국민들은 다시 고개를 돌리기도 하니까.

대선과 총선기간, 다수의 386은 한나라당과 친일정치세력으로 흡수되었다. 특히 친일세력이 정치화하는 과정 개입이 극심했다. 그들은 우익대세론을 믿었기 보다는 민심을 읽었다.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경제살리기 ’하나 만이 아니라 염증(厭症)이라 불려도 좋을 기존 정권에 대한 반발이었고, 이를 감지하고 그들은 훼절이라도 권력을 선택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대체로 세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일본이 직접 관리해서 침투시킨 친일분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에 의해 편입된 자들, 그리고 나머지는 이도 저도 아니지만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과 금력의 확보를 위한 수순을 선택하게 된 부류다. 이들이 친일 정치세력의 브레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단순히 뉴라이트집단이라고 친일집단을 통칭 하는 말로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게 현실이 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다양한 얼굴로 번져갔음을 의미한다. 그 중에는 친일을 살짝 뺀 우익이라는 모습도, 혹은 정통성을 운운하는 보수의 모습도, 나아가 진보나 기성 권력에 대한 오류의 지적을 통한 반대급부 현상도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하나의 흐름이 적절하게 관리가 된 데는 ‘사적 이익 ’을 목적으로 하는 당시 정치 판세 읽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에 상대하는 386은 이미 제도권 정치 의 맛 에 젖어 있었다. 친일로 훼절한 386이 칼을 갈면서 공격적인 자세를 견지한 데 비해 이들은 수동적이었고 자기보신을 위해 움직였다. 진정성을 잃기도 했지만 그들 내부의 분열을 감당할 여력도 가지지 못했다. 당연히 이들은 소위 ‘진보의 분열 ’이라는 덫에 걸려든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고상한 언어다. 사실은 ‘기득권에 대한 환상으로 인한 내부 갈등 ’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 많은 탄핵돌이 국회의원이 그랬다. 그들이 이미 권력자이며 그 권력이 아주 오래 갈 것이라는 몽상을 했다. 거들먹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련한 정치계는 훼절 386을 자신들의 품에 받아들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이야말로 상대를 공격하는 데 가장 좋은 창이었고, 또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훌륭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찌 되었건 간에 ‘친일 ’이라는 공유의 관념도 있었다. 그것이 비록 ‘신 우익 ’이라는 이름을 내걸긴 했지만 정치형세의 개편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친일 ’이 들어온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386이 가진 시대적인 모순이 초래한 바가 적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정치계의 386이 정치세력으로써의 386의 근거를 도외시하는 상태에서 이내 오만(傲慢)의 경계를 넘어서 버렸던 현실도 크게 작용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과대 평가했고, 형세판단에 실패 했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데 부족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아직도 많은 386들은 이제 친일로부터 여당 야당의 정치계, 그리고 여전히 민간단체의 범주에서 활동한다. 물론 다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의 생활본분으로 돌아갔지만 대표성의 유지는 ‘정치와 사회 ’에 속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 국가라는 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이들 분포도와 지향점은 재정립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기로에 선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기반은 취약해진 상태다.

MB정권은 일선 활동 연대기를 약 10~15년 정도 거꾸로 돌렸다. 이른바 386보다는 한참 연령 위에서 정권의 지배축을 형성한 셈이다. 어쩌면 지난 십 년이 꿈처럼 여겨질는지 모를 정도로 사회 틀은 바뀌었다. 이제 386은 그들이 다시 정치계 혹은 정치세력으로 활동하면서 자신들이 다시 사회의 주축이 되는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지난 십여 년 동안 겪었던 오만과 모순을 극복하지 않는 한, 그들이 설 자리는 별로 없게 보인다. 이미 곳곳에서 훼절과 변절, 그리고 변질을 한꺼번에 겪고 난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세대의 순수성 이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한 세대가 그렇게 쉽게 저물어가지 않는다는 강변은 둘째치고, 현 시점에서 제대로 과거와 현재가 함께 조명되어 수정되지 않는 인식으로 다음 세대를 겨냥해보는 것도 어리석기 그지 없게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고집하는 측도 있다. 그들은 작은 끼리의 세력은 가질지 모르나 국민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금 한국의 정치계가 완전히 죽어버린 상황에서 그저 친일정치세력이 판을 치는 기형의 정치판세가 횡행하게 된 데는 386세대의 모순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도 크다. 상대적으로 기성 정치계는 이걸 보고 나름대로 적절하게 사냥개로 활용하는 행태를 취한다. 그들은 ‘사냥개의 새끼 사냥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한,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아직 모르는 듯하다.

벗어날 수 있을까?

굴레를 빠져 나오려면 일단 그 모순과 환상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 미래는 없을 듯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9. DJ, 노무현 식 화장질 게임틀#

십 년 이야기를 해보자. 자칫 MB정권의 친일성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이렇다 할 경제위기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비판을 양비론(兩非論) 수준으로 보는 경우는 잘못된 것이다. 진실은 매우 건조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언젠가는 지금 가진 종합적인 색깔과는 다르게 숨겨진 이야기는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난 십 년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현재 닥친 친일 세력 과 일본의 본질적 습격과 침탈 국면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써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지극히 드라이한 분석과 비판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소위 ‘빠’라고 불리는 지지 그룹 들의 입장 이 건조한 중립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벌어진다는 사실 은 이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습기 가득한 편견일 뿐이라는 걸 먼저 지적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공과 가운데 공(功 )을 중심으로 본다는 의미이고, 과(過)에 대한 수용보다는 극복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은 ‘과’를 극복해야 하는 때이지 ‘공’을 드높일 때는 결코 아니다.

DJ 연대기는 친일이 상륙을 개시한 시기다. 김대중은 그 길을 열어 주었다. IMF사태라는 미명 하에 일본에게 한국으로 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것이고, 상당 부분에서 협조까지 하였다.

(2005.6.28 대한민국예술원은 창가학회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에게 감사패를 주었다. 창가학회는 만다라에 일본의 국조신 천조대신, 조선침략 일본 장수 등이 호법 선신들과 등장한다. 종교가 아닌 일본 기복신앙이라는 지적이 타당하고, 확실히 왜색임도 사실이다. )

창가학회 (공명당 )를1999~2000년에 걸쳐 공인된 집단으로 인정한 것은 그 작은 일례에 불과하다. (앞선 시대시리즈를 참조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일본 세력의 한국 내 교두보 구축, 나아가 친일의 재구성은 날개를 단 꼴이 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수준을 허용한 것은 그의 본성 자체가 국가적이라기 보다는 매우 비즈니스적 속성을 지닌 사람이기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이 일생 자체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의 성격을 말해준다.

그의 비자금이 하반기 논란이 되었다. 소위 이희 호의 3조원CD 인출설이 그것이었 고 일부 CD사본은 실제 발행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 지만, DJ는 퇴임 이후 지금까지 그의 비자금과 관련해서는 어떤 형식으로건 난무하는 소문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이나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엄연히 사실의 범주에서 논의될 일이지, 권력을 가진 자가 당연히 그 수준의 과도한 탐욕을 부릴 수 있다는 이른바 온정론(溫情論)으로 볼 사안 자체가 아니다.

이것은 그가 죽고 나면 폭발적으로 터질 사안이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집권 기간 동안 사실상 정치계를 비롯한 경제, 사회 등 전방위에 걸친 도청을 국정원을 통해 했고 그로 인해 임동원, 신건 등은 실형을 선고 받은 바가 있다. 그 자료가 바로 이른바 그의 개인 통치 사료에 속한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일체의 사료를 공개적으로 남기지 않았다. 약점을 쥐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그의 비자금 폭로 자체를 막고 있고, 사회에 전파되지 않게 하고 있는 저지선이다.

이른바 풍자적으로 ‘슨상님파 ’라고 불리는 그의 지지세력은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그의 명쾌하지 않은 처신이 초래한 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가 주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자랑꺼리는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자신의 오랜 기간 연구에 의해 이것을 하나의 자신이 가진 고유의 평화독트린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있을 뿐이다. 때론 그의 해외 네트워크가 자랑꺼리로 등장한다. 오랜 기간 동안 그가 펴온 주장이나 이론, 그리고 살가운 친구 사귀기가 뉴스로 등장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 이후에도 마찬가지 현상은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2006년 초에도 그랬지만 정작 북한은 DJ의 초청을 당시에도 거부했었고, 그의 이후 행적에 대해 대단히 불유쾌하다는 기색을 표명한 점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가 한반도의 평화를 주장하면서 노무현 정권에조차 훈수를 두고자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파트너가 되어야 할 북한에서의 거부는 의외로만 인식되어 있다. 맞장구를 쳐주지 않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 그 자신이 머쓱해지는 환경을 피하려 건강 핑계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도 일정 수준 지속적인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대답은 별로 신통치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점은 서울에서 정보전달이 막힌 상태다.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실세 ’로 군림한다.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바로 불법 도청에 의한 통치자료는 폭탄급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가 죽기 전까지.

최근 해외에서 나도는 이야기 중 에서는 DJ 비자금은 거의 6조원 규모라는 설이 거의 정설로 회자된다. 일본을 받아들이면서 그들과 결탁하여 불린 돈, 기업들로부터 받은 해외 구좌의 금고 기탁금, 그리고 한국 내로 들여와 기업, 부동산, 사채 등에서 굴리는 자금, 나아가 별도 관리하는 자금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를 나누기도 한다. 이것은 사실인가, 아닌가? 그에 대해서는 DJ 본인이 대답할 일이지만, 그는 이 일을 논의 하거나 명확히 밝힐 생각은 없는 듯 하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금도 한반도 평화를 주장하는 데 남은 생애를 다 보낼 작정인 듯하다. 죽기 전에 올바른 소리만 하면 그가 제대로 평가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이 없으면 DJ도 없다. 매달리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은 그에 응할 기색이 아직은 없다. 충분한 이유가 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가능한 대목이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은 일은 바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 사건이다. 월간조선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이후, 그 후속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기사가 나간 이후에도 동교동은 침묵했다. 더 밝혀지는 것 자체를 막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형태의 단속을 했다는 의미로 판단하는 게 옳았다. 이 또한 그가 죽고 나면 어떻게든 그 진실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의 피해자가 여전히 존재한다. 거기다가 세상에는 비밀이란 게 어느 순간에는 밝혀질 만큼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이 경우에는 드러날 거라고 보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더라도 마찬가지다. 관련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고 정치환경도 바뀔 조짐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는 작년 대선에서 손학규, 정동영 두 패를 쥐고 흔들었다.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반발은 민주당으로부터 강력하게 나왔다. 박상천은 동교동에 반기를 들었고, 그로부터 사실상 DJ의 정치 영향력은 끝났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김홍업의 누가 보기에도 무리했던 보궐선거 출마로부터 빚어진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조차 그의 비자금을 비롯한 많은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박지원이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되어 입성했지만 그는 민주당 내에서도 꽤나 외롭게 보이는 위치다. 말빨이 먹혀 들고 있지 않다. 김대중 시대가 저물어가는 기색이다. 그가 어떤 정치인이었던가는 불문하고 그가 남긴 공과 가운데 과(過) 또한 우리 시대의 정치적 산물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안타깝다. 죽고 나면 마구 튀어나올 온갖 사악한 소재에서 그는 영면(永眠)하기도 쉽지 않을 듯해서다.

노무현 이야기를 해보자.

워낙 MB정권 자체가 개판이 되다 보니 다시 그가 조명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착시현상이다.

그는 일본의 엔케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한국 경제를 부동산과 소비 모두에 버블화시킨 일등공신이다. 2002~2007년까지 한국으로 들어온 엔케리는 금융권을 통한 공식적인 것으로부터 사채 등에 이르기까지 최소 2조 엔에서 많게는 27조 엔에 해당한다 고 본다 . 거기다가 개발에 따른 토지보상금의 남발로 인해 서울 경기 지역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놓았다. 부동산이 ‘자신의 유일한 정책 실패 ’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부동산이 바로 일본을 불러들이는 창구가 되었다는 건 정말 시대적 사건이다.

그는 ‘민주주의 ’하나만은 챙겼다. 그러나 ‘민주 평화 통일 개혁 ’가운데 단 한 가지만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르게 만들었다. 그가 내민 카드는 자꾸만 금칠을 하는 수순을 밟기도 한다. 이를테면 MB정권에 대한 반사작용이지만, 굳이 조순이라는 걸출한 경제학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한미FTA는 선택해서는 안될 길이었고, 그의 임기 동안 과도하게 보편화까지 겨냥해서 실천한 신자유주의 정책, 그리고 MB정권이 아니라 이미 그의 임기 중에 진행코자 했던 미국형 투자은행의 설립 등 금융정책 조정 이나 방만한 해외투자의 허용 등의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활 황기에 있었던 그는 적어도 경제지표에서는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시기, 특히 2006~2007년으로 오면서 여러 지뢰들이 곳곳에 심어졌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제적인 이러한 부분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 시절이 어땠고 오늘이 어떻다는 수준의 평면적인 분석으로 일관되는 경우가 많지만, 세밀히 따지고 본다면, 일단 당시의 문제점이 그리 녹록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으로만 본다면, 그는 민주세력이라 이름 붙인 신민당-민주당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자기 식에 맞게 개편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집권을 도운 셈이 되었다. 한국 정치에 있어 자신의 절대몫을 챙기지도 못했다. 실패했다는 게 정설이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어떠한 앞으로의 시도도 성공까지 이르기는 힘겹게 보인다.

그는 중도좌파라고 스스로 위상을 매겼지만 실질적으로는 탄핵 사태 이후 미국의 의도를 어떤 친미 정권보다도 충실히 따랐다. 감정과 정책의 불균형은 정치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기득권과의 저항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가 기득권이 되어 버린 한계도 노출되었다. 바로 탄핵돌이들의 오만이 불러 일으킨 것으로부터, 자신들이 할 몫만 하면 된다 며이어올 사회 국가의 흐름 자체를 감안하지 않는 안일한 대응을 한 끝에 노무현 계파라는 정체성 이나 정치적 추구점 마저 흐릿해져 버렸다. 퇴임 이후 그를 다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 부분에서 그가 다시 정치적 전면에 설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쉽지가 않다. 오죽하면 노무현 말기 안희정은 그들을 일컬어 폐족(廢族)이라 했겠는가. 그 때를 잊고 다시 화려하게 등장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한국 정치사에 빚어진 과거의 일에서 연원을 찾는다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비견하는 것은 현 정권이고 보면, 적어도 노무현은 친일 자체를 수용하지는 않았다는 것 만은 표면적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정작 뉴라이트집단을 비롯한 친일의 사냥개는 노무현 시기 본격적으로 엔케리 트레이드와 함께 물밀듯이 밀려와서 서울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저지는 실패했다. 보다 강력한 수단을 동원했어야 할 시기, 그는 왠지 이를 방치한다. 수성(守城)의 한계였다. 거기 서도 ‘민주 ’를 마치 무슨 주문을 외듯 외쳤다. 그건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 특히 침탈시기엔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일정 수준 불안정을 몸에 달고 다닌 안정감이 없는 대통령이 라는 평가를 받고 말았다. 민심이 그를 떠난 최대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안정감의 결핍이 초래한 바가 가장 컸다고 봐야 한다. 그의 고심이 아무리 있었다 해도 결국 실패는 실패로 낙인이 찍힌다.

MB정권은 그를 압박하려고 하는 전략을 조금씩 수정하는 중이다. 굳이 그렇게 하기 보다는 그의 주변을 캐는 작업에 들어갔다. 노무현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는 사건을 연속적으로 벌이는 것, 소위 변호사 기질이라는 것인데, 굳이 그렇게 떠들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정권 내부에서 흘러 나온다. 통치자료 문제도 여전히 쟁점이다. 과연 무슨 내용이 있길래 이렇게 집요할까 싶지만,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가진 자료의 파괴력을 알기에 남겨진 사료 자체를 보고픈 욕망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당선으로 한나라당은 약간 패닉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북정책에 있어 노무현의 10.4 공동선언이 다시 제기될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고자 하는 움직임이 지난 시기 노무현의 통치사료에 대한 압박이었다고도 보여진다. 물론 그 밖에도 많다. 경제정첵 부분에서도 전임 정권의 잘못을 캐는 작업을 원치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MB 정권은 확실히 노무현이라는 캐릭터 자체에서는 반감을 확연히 가지고 있다는 증거기도 하다.

사실상 2007년의 노무현은 거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칠 부분조차 없었다. 고스란히 정권을 내주는 환경이 되었고 그는 차라리 견질어음이라고 하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가 4년 내내 이야기하던 대북정책 원칙은 그 순간 파괴되었다. 변명을 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결정 한 것이다. 시니컬 하게 보자면 급한 김에 ‘자기 욕심 을 먼저 채운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10.4 공동 선언이 나오기 전날인 10.3 베이징에서는 북핵 2.13합의 이후의 10.3 합의가 등장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협조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10.4 공동선언은 그 내용면에 있어 실천방식에 있어서는 대단히 모호한 구석이 많은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정작 대북관계에 있어 그 스스로 능동성을 발휘해본 전례가 없다. 그것은 2005년 이후 미국을 싫어하면서도 미국을 심장까지 받아들이는 모순을 그 스스로 감당하면서 결국 한미FTA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실질적 미국추종에 속했다. 미국이 2006년 말 이후 대북정책을 바꾸었음에도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는커녕 이를 기다린 것도 그 때문이다. 그도 ‘따라쟁이 ’를 했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을 그도 집권기간의 마지막 카드로 선택하게 된다. 2008년 2월 월간 신동아는 정상회담의 대가로 현금 1천만 불이 북한에 지급된 추정기사를 실었다. 청와대는 해당 기자에 대한 고소고발을 발표했지만 이내 시들해지고 말았다. 할 수가 없었다. 만일 했다가 그것이 증빙되는 상태는 더욱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10월 정상회담은 당초 8월 예정되었다가 10월로 연기되는 과정을 거쳤다. 홍수피해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명분이었을 뿐이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노무현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소요된 내용물이 문제였다. 현금 2,000만 불, 그리고 1억불 어치의 물자 공여였다. 이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2,000만 불의 경우는 노무현 정권의 실세 그룹에서는 정확하다고 확인되고 알려진 숫자에 해당한다. 그런 그들도 물자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침묵한다. 왜 일까?

북측이 요구한 것은 군용물자 였다. 군화, 모포 등 특수한 상품과 자재 들이었지만, 당시 급박했던 노무현은 이 가당찮은 요구 마저 수용한다. 정권 말기, 그로서는 정상회담의 필요성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 결정으로 정부 창고의 비축물자 가운데 불용성으로 시한을 넘긴 물자들이긴 하지만 상당량의 특수한 용도의 물품이 북한으로 운송되었다. 바로 그것을 꿰어 맞추지 못한 상태에서 8월 회담은 연기된 것이다. 그것은 10월에도 모두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통전부장 김양건이 재차 서울을 방문, 노무현에게 나머지 물자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대체로 정치적 화장질은 ‘평화를 위해 그 정도의 돈을 못쓰는가! ’라는 주장을 통해 합리화를 하게 된다. DJ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인해 박지원은 실형까지 살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를 이행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비록 DJ가 노벨평화상을 탔지만 북측은 ‘공동으로 수상할 일 을저 혼자 받는다 ’고 손가락질 한 전례도 있다. 그것마저도 ‘노벨상 공작 ’이라는 정부기관이 직접 개입된 작업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는 상태다.

DJ를 세계적인 지도자로 이야기하면서, 노무현을 민주주의를 지킨 지도자로 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들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써 막지 못했던 오늘의 침탈 사태는 사실상 그들의 책임이다. 한 사람은 ‘돈과 욕망 ’이라는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고, 다른 한 사람은 ‘너무 순진했지만 어리석었다 ’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치란 게 원래 그런 속성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한국 정치사에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시대를 위한 정치인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렵다. 공과로 따져볼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결코 드러난 열렬 지지자인 ‘빠’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울 지 모르나 분명히 사실에 입각해서 전개된 것도 틀림이 없다. 이현령비현령하며 아전인수 해석을 내놓을 필요도 없다. 혹은 진보의 분열을 운운하거나 혹은 친일 전선에 대항하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 등으로 과대 포장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다시 진정성이 전혀 없는 세력만을 구축하자는 의미밖에는 안 된다. 그로부터 사실상 민심이 분열되고 진실은 가려진다. 그래서는 미래의 희망이 진짜 없다.

건조한 진실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다. 앞선 시대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지금에 와서 친일정권의 탄생과 친일의 재구성이 아니라 고착화 정착화까지 보게 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몹시 냉정하게 봐야 하는 때로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분열만이 마구잡이로 조장될 뿐이다. 그것은 민심을 떠난, 민심이 화합하지 않는 파열(破裂)이며, 친일정치세력에게는 환영 받을 일에 속한다. 오히려 그들이 공과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지난 십 년, 진보는 진보가 아니었다. 두 개의 정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기득권을 버리는 날, 그래서 진정성을 회복하는 날, 친일 또한 그 순간 힘을 잃을 것이다.

10. 무너지는 시대, 좌절하는 역사#

한 시대를 정의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사람이 살아가는 날들 에는 중복되는 연속성이 있다. 그래서 어떤 시점을 끊어서 말하기가 쉽지 않고, 그 또한 전후와 그 당대의 이야기를 섣불리 거론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된다. 경험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관점의 부정합성이 존재하는 탓이다.

대한민국이란 정부가 수립된 후지난 6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여러 갈등을 빚어 왔다.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 통일과 반통일, 개혁과 반개혁으로부터 지역갈등, 정치적 노선의 차이, 개발연대의 산업화 경험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중소기업과 대기업, 기득권과 서민층의 분배 갈등, 부동산 불로소득과 노동소득, 고용문제, 평등교육과 경쟁 교육 등 사회 모든 분야들이 하루라도 갈등과 분열 없이 굴러온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단일 명제는 유지되었다. 즉, 일제 식민지의 잔재에 대한 거부감과 친일 집단에 대한 경계심리다. 숱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이 싫은가? ’이유조차 논리정연 하게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반일감정이라는 원초적인 감성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친일 세력들이 정치, 경제, 사회 등의 기득권을 암중에서 행사할 때도 그들에 대한 연민보다는 강한 거부감을 표명하면서 이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시각은 유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이 제국주의 팽창주의 본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 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종종 알게 되는 일들이 생겼었다. 독도문제를 비롯한 과거사에 대한 겉치레 같은 사과 그 이후 바로 번복 , 나아가 정부 각료의 여전한 신사참배 강행 , 일제 강점을 타당하게 서술한 새역사교과서 파동 등 일본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극우와 우경화의 바람을 경계하는 아주 강한 심리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거의 조건반사에 해당되었다. 피해를 입었던 자의 반응이기도 했다. 일종의 경험칙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 시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한국 내 친일심기 고등 스파이의 한 사람인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 서울지국장의 말마따나 한국의 교육은 그리 가르치지 않아도 학교나 가정에서 ‘반일의 파블로브 ’를 양산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그걸 만든 것은 늘 일본이었다. 일본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괘씸하게 ‘파블로브 ’를 운운하는 가쓰히로를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십 년 집중적으로 한국 내의 친일분자 관리와 사냥개들의 숫자를 늘리는 데 기여를 했다. 그의 역할이야말로 바로 ‘친일의 재구성 ’에서 지대했던 셈이다. 이 사람은 바로 ‘간첩 ’, 그 중에서도 ‘고등특무간첩 ’이다.

친일에 대한 거부감, 제국주의 팽창주의에 대한 경계, 그리고 이유없는 반일이란 요소는 단순히 ‘애국심의 소재 ’를 따질 수 없는 문제다. 연원이 복잡하게 이어진다.

분단 국가에서 모병이 아닌 징병으로 군대를 나온 사람들에게 있어 형식적 제 1 주적 (主敵) 은 늘 북한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의 심경(心鏡)에는 항상 주적인 일본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들은 우리의 선대를 이어오면서 ‘독립 ’을 하지 못하게 만든 원초적 죄업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과는 애당초 없었다. 그러니 미움이 깊어지는 것이다. 한일 간에 평화란 없는 이유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일본이 지금까지 한국이란 사회에 대해 이처럼 강한 저항감을 형성시킨 데는 그들만의 내부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즉, 그들의 국내 정치에서도 ‘미꾸라지 무리 속의 가물치 ’처럼 일정한 긴장 유지가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사회 전체를 우경화로 몰고 가고자 했던 의도가 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극우, 우익세력은 한국 과 남북관계라는 긴장상황, 그리고 북한이란 요소를 거꾸로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철저하게 활용했다. 그런 가운데서 진정한 사과와 평화적인 접근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도 보여진다. 그럴 마음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상태는 곧 서로가 대립적 관계이면서도 가까이 있으니 경제와 관광 등의 교류를 하기는 하는 협력적인 유대를 가진 기묘한 형국이 었다. 그런데 정작 이를 서로 간에 잘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은 한일간의 일부 정치세력 간에 벌어진 것이지 민간 부문은 그렇지가 못했 다. 항상 경계는 저변에 깔린 상태에서 벌어진 교류였을 뿐이다. 그나마 협력 수준에서 적절하게 정치도 경제도 이만저만 하게 유지되었던 것을 최상으로 여기던 둘 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울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깊어지듯이, 그렇게 구조적으로 고착화 되듯이 일본은 한국을 엮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일본은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친일의 재구성 ’과 ‘다시 백 년 ’이라는 이름의 일본 기획자에 의해 의도된 한국 사회의 친일화 작업 전반은 총칼만 들지 않았지 ‘침략 ’에 해당한다. 이것은 단순한 선무(宣撫) 수준이 아니 며, 협력의 확대도 아니다. 그 행위의 목표가 친일세력의 항구적인 한국 내 정착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전쟁 ’이라고 봐야 옳다. 즉, 물자와 장비, 도구, 그리고 전술과 전략이 동원된 진짜 전쟁이다. 나는 이것을 ‘시대전쟁 ’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정의한 바 있다.

(동아일보에 실린 뉴라이트 연원. 회원 17만 명이 허상인가 실체인가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이들은 친일정치세력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 중이다. 동아일보는 뉴라이트 창립 때부터 적극적인 후원자로 처신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저들 17만 명 가운데 정말 친일이건 사적 이익을 위한 친일이건 간에 일본을 위한 단 한 번의 행위를 한 사람도 바로 매국노라고 인정할 것이다. 즉, 새로운 ‘을사 17만 적 ’(賊)이 생겼다고 본다. )

아직도 많은 한국 국민들은 이것을 전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한 쪽은 전쟁을 선포했는데 다른 한 쪽은 ‘괜찮아 ’, ‘나는 침묵이야 ’라고 말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대체로 수용 가능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 혹은 비난은 하지만(비판도 아니다)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지켜보는 수준에서 가늠코자 하는 안이한 경향을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무서운 말은 ‘설마! ’라고 말하는 무지다. 더 우스운 것은 국민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일본 편이 된 상황, 그러니까 ‘친일의 사냥개 ’가 국민 사이에 퍼져 마구 활동 중이라는 것이다. 이 전쟁을 쉽게 한국의 오늘이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본질부터 지고 있는 탓이다.

전쟁과 침략이 벌어졌음에도 이런 경우를 수용하는 것이 바로 ‘식민의 근성 ’이라고 분석해보기도 한다. 1948년 이후 저변에 자리잡은 아주 질긴 민초의 식민 수용심리가 부활을 했다. 그것은 다시 발전해서 일본에 서 재차 과거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가동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 게 만들었고 또한 멀뚱허니 수용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전례 에 충실한 일본의 ‘다시 한 번 ’이라는 전술 전개 상황은 발생 중이다.

격렬했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겪고 난 이후, 한국 사회는 경제적 측면에서 서서히 개인주의에 젖어 들었다. 계층화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난 여러 갈등 요인들이 서로 간에 ‘공감대 형성 ’을 파괴하는 결정적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고, 무관심과 자기본위의 사고는 애국이나 혹은 애족 같은 단어들을 생경스럽게 여기 도록 만들어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민들은 온순하며, 변화를 두려워한다 ”는 명제가 주어진다. 이 문제에서 상식, 그 이상의 머리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강한 경향을 보인다. 그것을 ‘온순 ’이라고 표현한다. 게으른 것이다. 한 마디로 시대가 어찌되건 간에 내 일이 아니라는 방만의 자세도 보인다. 그것도 ‘온순 ’이라고 부른다.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모습들과 뒤섞인 상태, 그것이 한계로 보일 뿐이다. 임계점이 어디일까를 가늠해보면, 두 가지가 나타난다. 하나는 역시 개인의 경제적 안위를 확실하게 눈에 보이게 위협당하는 경우다. 이 때도 온순 그 자체에 머문다면, 그것은 식민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저항본성이 죽었다고 봐야 옳다.

다른 하나는 느릿함이다. 대의민주주의에 의해 선거 로선출된 정권에 대한 일종의 관망(觀望)과도 같은 것이다. 마음 속에서 5년짜리 정권이라는 시계추와 타이머가 작동한다. 여유 있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보자는 견해가 나오는 것이 이런 유형이다. 아주 온건한 , 사실은 몹시 비겁한 관찰에 속한다.

이 두 가지는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을 막는 결정적 이유로 자리잡는다. 거기에 여론공작이 보태진다. 신문과 방송은 적절하게 개인의 사고를 지배한다. 당연히 보도도 통제된다. 식민의 본성을 촉발 시키면서 기득권이 임의적으로 민심을 조종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강제적 인지부조화 기법에 속한다.

변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느린 것이고 하나는 아주 파고가 크고 빠른 것이다. 일본의 한국 침탈은 아주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게 보인다. 애매모호한 중간지대를 선택하고 있고, 오히려 빠르게 서두르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형성된 친일 매국 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실상 일본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이 작업을 해왔고, 그러므로 급할 것이 없다는 태도이지만, 사냥개들은 예상치 못한 반발이나 저항을 감안 해서 더욱 조급증을 내며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 다. 사냥꾼보다 사냥개가 더 바쁜 이유는 그들의 ‘몫 챙기기 ’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협박과 회유, 협상을 통한 챙기기 국면이 벌어진다. 이건 침탈이 아니라 수탈(收奪)의 개념에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여기에 대한 반발의 공감대 가 전혀 강하게 형성되지 않는 것은 무지나 몰지각으로 인한 것만도 아니다. 무관심과 개인주의가 가진 온건함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아주 잘게 부숴진 파도들이 끊임없이 바위를 때리고 그 바위 내부에서도 균열이 조성되는 형세라 할 수 있다. 둔감하게 만들면서 파도에 저항하려는 세력은 형성되지 못하고 공감대 또한 흐지부지 하게 되어 버리는 시간이 깊어지는 중이다. 일본이나 한국의 친일사냥개들은 이것을 노린 것이라 보여진다. 어느 틈에 반일의 파블로브가 친일의 둔감함으로 바뀌어진다. 이건 지속적인 공성(攻城)에서 일본이 승리를 곧 자축할 날이 온다는 걸 의미한다. 벌써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특별한 대세가 없는 한, 일본은 한국에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조만간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건 연속 동작으로 나올 듯하다. 한일해저터널, 한일간 통화스왑, 스왑확대, 엔케리 자금에 대한 회수와 배려, 일본전용공단, 일본 자금의 대기업 공여, 부동산 PF 등 사채성 자금에 대한 관리 확대,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 참여,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사냥개들을 앞세워서 일부는 담합하고 일부는 떼주는 식의 조정이 이루어진다.

시대를 구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개인의 시간이 모여 사회와 집단, 국가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고, 그 시대가 모여서 역사를 형성하게 된다.

그 점에서 본다면, 오늘 한국으로 깊숙하게 다시 들어오는 친일은 이 시대를 다시 식민의 시대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침탈이다. 시대를 빼앗긴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자주적 시대감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시대 속으로 아주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상태다. 이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수용에 해당한다. 이유가 여하하건 간에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바로 ‘식민의 수용 ’이라는 상태다.

결국 떠난 지 63년 만에 일본은 서울에 친일의 기지를 새롭게 형성하는 데 완전히 성공했고, 이제는 약간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온 기세를 이용하여 고착화 정착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저항하는 안전판은 미미하기 그지 없다. 오히려 미리 침투된 친일 사냥개는 저항노선 자체를 공권력이건 마타도어, 메카시즘, 그리고 법률적인 잣대까지 들이대면서 반발하는 민심에 공략을 개시하는 중이다. 과거 반독재나 민주 쟁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사전 단속의 의미마저 엿보일 정도다. 사실상 ‘싹이 잘리는 현상 ’도 나타난다. 워낙 거세게 몰아붙인다.

역사를 빼앗기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은 교과서 문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조선근대화에 기여한 바를 연구했다고 하면서 한국 땅에 학술 을 포장한 접근을 안병직이 1988년 소위 ‘그들만의 연구 ’와 ‘의도를 듬뿍 담은 학술이란 이름의 친일포장 ’을 시작 한 이래로 딱 20년 만에 ‘친일은 나쁜 것이 아니다 ’라는 명제가 출몰했고, 이제는 경제적인 이유로라도 ‘한일경제 동맹 ’까지 곧 표면으로 등장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름을 그렇게 붙이건 아니건 간에 현실적으로 진행 중인 국가의 주요 정책에 속한다. 단순히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아니다. 역사와 경제를 엮어 들어오면서 고착화되고 있는 이 흐름이 중요하다.

일본은 우경화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아소 다로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을 ‘대동아전쟁 ’이라고 표현한 것이 습관적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 그걸 믿을 바보는 없다. ‘대동아 ’(大東亞)라는 그 단어에 포함된 지독스런 팽창주의 야욕을 무시한다면 모를까, 그의 사상적인 지향점이 어디인지가 드러났다고 보는 게 옳다. 바로 제국주의다.

되풀이 되는 역사는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일본이 그렇다. 그들에게는 침략역사를 정당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 침략의 후유증과 진행과정의 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게 재 시행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전쟁과 침탈을 하려는 자는 당연한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오히려 이들에 대해 동조의 봉화를 국민들 몰래 날린 봉화수 (이제는 드러내놓고 한다.) 와 이들에 저항하는 세력을 무조건 물어뜯어야 하는 사냥개가 날로 늘어난다. 이 상태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역사는 더 이상 존재의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침투가 아니라 침탈을 위해서는 먼저 빼앗아가기 보다는 주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맛에 길들여지는 환경까지 그들의 침략 시나리오에 포함된 상태라면 역사를 팔아먹는 것도 잠깐 만이다. 그러나 수탈은 곧 이어진다. 그것이 목적이다. 90%의 국민은 거기에 방어막이 없다. 그들에 동조하는 10%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당연히 90% 가운데 일본의 행보에 동조한다는 약 20%마저도 수탈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환영하면서도 바로 강도짓의 대상이 된다는 걸 모른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왠지 대단히 ‘여유롭게 ’보인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독스런 허장성세다. 해방 이후의 국민의 역사와 정체성, 정통성에 대한 인지 정도가 전체적으로는 그저 한낱 부풀려진 천박한 역사 인식수준 이었다는 것이 한껏 드러나는 요즘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도 버겁게 환상을 꿈꾸는 한국 사회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안방까지 밀려와서 ‘친일이 대세다 ’라고 외치기 전에는 꿈쩍도 안 할 아주 비겁한 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을 본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 서한국민으로 오롯이 존재하는 ‘역사 ’는 사실상 죽었다.

11. 우리 시대에 통일은 없다.#

일본의 사상적 정체성을 ‘우파 ’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는 단세포적 분석이다. 냉정하게 보아 일본에 ‘우파 ’는 없다. ‘국가주의 ’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민족주의와도 다르다. 일본을 지탱하는 정신세계는 여전히 일왕을 만세일계(萬世一界)로 하는 -그를 앞세운- 그들만의 팽창주의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우파가 아니라 ‘세력 ’이다. 진보니 보수적 민족주의와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한다. 그들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일본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머리카락과 꼬리만 내밀고 흔들기 일수이고 보면, 일본이란 나라 속의 이 세력은 매우 은밀한 속성을 지닌 자들임을 알 수 있다.

세계를 들여다 보면, 흔히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외교체계라는 형식을 기본으로 상호 내지 다자간의 행정적 처리가 이루어진다. 국제사회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국제연합 ’이라는 기구의 성립 이후, 등록된 국가형식을 전제로 해서 국가와 국민, 사회를 나누는 것이 보편적인 기준이다. 그렇지만 그 실상을 파헤쳐 보면 약간 다른 유형이 눈에 띈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에서 과연 미국달러가 기축통화의 구실을 해온 브렌튼우즈 협약을 전후한 시기의 이해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세력 ’이라는 낱말이다.

중동의 자그마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유대세력의 본거지다. 그러니까 유대계라는 하나의 민족이 집단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그들은 이미 국가를 초월하는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금융재벌인 로스 차일드로부터 일련의 정치경제 집단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세력이며 국가 단위를 넘어서 국제적 활약을 한다. 이런 예는 흔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방산업계 등이 금융자본과 결탁한다는 것은 알려진 바와 같은 것이고, 중동 지역의 경우도 부족 단위에서 국가 단위로, 다시 종교적인 파벌 단위로 서로간의 국가 영역보다 더 강한 유대감을 가지는 경우도 흔하다.

아시아로 와보면 중국의 경우는 중추세력이 곧 중국공산당(중공당)이고, 일본의 경우는 일왕을 중심으로 올려 놓고 극우와 우익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세력을 형성하며 주축 역할을 한다 .

이렇게 국가를 벗어난 세력의 범주가 현실 정치에서 기능하는 경우, 그것은 눈에 확연하게 띄질 않는 경향이 크다.

지금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엄격하게 3단계는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침탈의 수법을 강화하는 데는 일본이란 국가가 아닌 일본의 극우와 우익이라는 집단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친일 ’의 바람 잡이 역할을 하는 한국 내의 친일사냥개 또한 이들 세력권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까 세력 대 세력간의 담합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과 미국 내의 세력들은 일본을 아시아의 이스라엘로 키운다는 전략을 착착 이행시켜왔다. 일본의 세력들은 당연히 생존을 위해 이 방안을 적극 선택했다. 제국주의와 팽창주의에서 막대한 부를 형성했던 일본의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정관계 자체가 이러한 트랜드를 수용하면서 미국에 의존하거나 기생하는 형태를 띠면서 자신들의 힘을 재축적하려고 했다. 그 상태에서 제 1 의 주적은 과거 소련이었고, 소련이 해체된 상태에서 제 1 주적은 중국이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중일 관계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성이 서로간에 있었기에 국가간 관계형성은 깊어져 왔다. 그러나 세력 간에는 다르다. 중공당과 일본 극우우익은 서로 간에 물과 가름 같은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견지력(堅持力)을 미국은 활용한다.

당연히 한미일 동맹에서 우위는 미국 입장에서 일본에 두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일 간의 바탕에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는 한일 관계가 험악해지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일본이 한국에 거대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지션까지 가주기를 바란다. 물론 이 또한 자신들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면 안 된다. 그게 미국식이다. 빅브라더의 위치는 쉽게 내주지 않는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 제1의 군사대국이다.

당연히 일본의 오늘은 극우와 우익이라는 세력 플러스 미국이란 배후의 세력을 함께 동반하고서, 일정한 묵인 하에 한국에 대한 친일화 작업을 서두르는 모습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 상태에서 일본은 더 이상 우리가 말하는 ‘우파 ’가 아니라 철저하게 제국주의와 팽창주의적 관점을 숨기거나 때로 드러내는 입장으로 변모한다. 그것이 바로 식민의 경험에서 얻어낸 한국을 다스리는 방법이니까.

친일사냥개가 정치세력으로 서울에 안착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은 미국과의 담합을 서둘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부분 도 있다.그 중 중일관계와 북미관계 가 사실상 이 일의 장애요인이었 지만, 그 동안 효율적으로 잘 말려온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한 친일화 작업이 진행 중에는 절대 남북한과 북미간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서는 안 되는 조급증이 있었다.

북핵을 하나의 구실로 봐야 한다는 것은 핵개발 자체가 80년대 이후 지난 근 20년이나 된 오래된 사안이라는 점을 살펴보면 금새 드러난다. 국제정치나 외교 등으로 이 문제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해법은 없다. 이 결정은 세력 간의 담합을 기초로 하고, 우선 순위가 정해져 있다.

버락 오바마의 미 대선 승리는 한국, 일본의 세력들에게는 꽤나 당혹스런 과제일 터이지만, 그 이전 부시 행정부가 마지막 내린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도 그에 못지 않은 충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극력 반대를 했지만, 부시는 어차피 민주당 정권 하에서 버락 오바마가 북한방문까지 염두에 둔 대북 대화와 협상이라는 카드를 꺼낸 마당에 주저할 바가 없었다. 성과를 다 남겨두고 갈 이유도 없었거니와 이 시점 정도에서는 어느 수준에서 매듭도 필요하다 고판단했던 것으로 본다.

시점상으로 불균형이 찾아온 것에 대한 불안감이 표출되는 중이다. 일본은 10월 대북제제를 반 년간 연장했다. 표면적으로는 납치자 문제라고 하지만, 이것도 가만히 보면 그들이 일본 내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데 카드를 사용한 후폭풍이지 전격적으로 해결 못할 과제는 아니었다. 이걸 ‘시간끌기 ’라고 부른 이유가 거기 있다. 일본의 지상과제는 대북문제를 무조건 해결지연 시키는 것에 있었다는 것이 작년과 금년으로 이어져온 일련의 흐름이다. 그래서 일본의 소위 한반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은 ‘잘 새겨 들어야 ’한다. 글자 그대로의 뜻이 전혀 아니다. 항상 배후에 한 자락을 깐다.

한국의 친일정권은 이에 적극 동조한다. 상호주의 기조유지 , 갑의 위치 회복, 원칙의 고수, 비핵개방3000 같은 이야기는 이러한 자신들의 시간끌기의 산물 이고 변명 일 뿐이다. 그 중간 중간에 전혀 성사 가능성이 없는 정상회담 제의로부터 정부간 대화 촉구 등이 나왔지만 북한은 지난 3월 이후 남한정권을 일단 친일정권으로 정의를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 이후 7월 금강산 피격사건까지 터진 상태에서는 해법 자체가 없다. 오히려 겉으로는 ‘대화재개 ’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는 옵션을 항상 붙인다. 12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의 통제를 강화한다는 북한 군부(국방위원회)의 11월 12일자 전통문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바라던 바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오히려 그들끼리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대화가 이루어질까 봐서 걱정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내부적인 보수세력의 단합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친일의 재구성에서 친일의 완성까지 넘어가는 이 시기는 그들 친일사냥개들에게는 관건이 되는 시기다.

문제는 미국이다. 부시도 임기 말에 테러지원국을 해제해 버리고, 오바마는 전격적으로 움직일 기색마저 보이는 상태에서 ‘통미봉남 ’이라는 단어는 아주 무서운 비수가 되고 있다. 계획에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 ’(唐慌) 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오바마의 좌파적 관점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한국과 일본의 담합된 세력은 이것을 어떻게든 지연해야 할 절대절명의 과제가 대두되었다. 그 상황에서 북한은 오바마 당선을 상정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노련한 외교관인 이 근을 워싱턴에 파견을 했다. 조만간 6자 회담은 재개될 것이고, 이는 오바마 시대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도 원하는 바이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문제해결을 바란다는 취지를 표명한 바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시 삐걱대는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의도가 더 중요해지는 셈이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현재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축이 되어 있다.

이렇게 상황이 잘 진전 되면 북미 간에는 급물살을 탈 수 있는 새로운 변수가 만들어질 공산이 더 크다. 여기에는 북한이 어느 만큼의 양보를 할 수 있을 것인지, 8년 전 클린턴 행정부 말기 올브라이트 방북 이후로 돌아가는 전격적 프로그램을 가동 가능한 것인지가 달 려 있기도 하다. 여전히 변수는 있다. 그러나 큰 흐름은 그대로 갈 공산이 크다. 이것이 오늘의 한반도다.

관건은 이 시점에서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보면 향후의 흐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급해진 건 그들의 입장이니까.

일본은 일단 미국의 움직임이 급속하게 한반도로 오는 것을 경계할 것이다. 마침 금융위기 상황에서 오바마라고 하더라도 일본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미일 간의 담합구도가 형성될 개연성은 그래서 아주 높다. 다시 일본이 원하는 시간만큼 북미관계는 어떤 사유를 대더라도 해결이 연장될 공산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6자 회담에서 일본 배제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흐름을 읽은 북한의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별로 소용이 없다. 이것은 미일 간의 담합을 기본으로 한다. 이것도 변수다.

한국은 대응방안 자체가 없다는 걸 즐기고 있다. 국회에서는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특사로 갈 사람도 마땅치 않거니와 당장 특사가 토의할 주제가 없다. ‘무조건 솔직한 대화 ’라는 MB의 어법은 남북한에 그만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말이다. 그러니까 이걸 해석하자면 ‘대화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한 꼴이 된다. 그러면서 남한 내의 보수를 결집한다. 뭣도 모르는 그들은 다시 ‘반공 파블로브의 개 ’가 된다. 무지는 이렇게 사람을 짐승처럼 만들어 버린다. 이용당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회다.

북한이 이러한 전후사정을 짐작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모를 일이다. 내부적으로 와병설의 진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만하거나 아니면 정도가 심한 일 이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한 차례 아주 극심한 홍역을 치른 것도 틀림이 없고, 이래저래 어수선한 국면임도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다. 제대로 방향 자체가 설정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면 안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제대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은 북중 관계는 밀월 국면이 조성되고는 있지만, 이것이 북미관계의 완전한 궤도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여전히 서로 간의 갈등구조를 양산할 개연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지금의 ‘미워도 다시 한 번 ’은 불안정하게 보인다.

중일 간에도 약간 담합은 있었다. 10월말 아소 다로는 후진타오와의 회견 이후 중국 CCTV와의 대담 에서 중일 관계에 상당한 역점을 둘 것임을 시사했다. 오바마 당선을 염두에 둔 접근법이었다. 일본은 중국이란 패를 가지고 서로 간의 담합이 가능한 구석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도 굳이 북한이 서둘러 북미관계를 해소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북한이 이 게임에서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만들기 빡빡해진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은 높게 보인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불안감이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남북관계에 모종의 어떤 정부간 대화 개연성이 있는 것처럼 말한 MB발언은 일종의 블러핑 수준으로 본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였지만, 만일 그가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을 일본으로부터 듣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정 시점까지는 지연한다는 일본의 싸인이 있었다면 정권이 안심할 수 있는 복안은 된다는 의미다. 어차피 금년이 아니라 내년 상반기 이후나 하게 되면 유리한 위치가 나온다고 생각하던 참이니 말이다. 이것이 지금 한미일 동맹에서 한일 동맹의 실체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대화제의가 아니라 배후에는 항상 정권교체를 염두에 둔 준비를 운운하는 정치세력을 두고 그들의 활동을 말리지 않는다. 삐라는 그 렇게 북한 상공으로 끊임없이 날아간다. 법적인 제재를 못한다는 통일부 장관의 말은 거짓말이다. 그것은 국가외교를 훼손하고 방해하는 행위이므로 업무방해가 충분히 성립된다. 그러나 막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성이 원래 없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 채 남북관계를 진행하는 것이다.

대략 이 정도 흘러가는 품 세만 봐도 남북한은 MB정권에서 통일이라는 이름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리석게도 ‘북진통일 ’운운하는 사람마저 생겨나고 있다. 한반도를 전장(戰場)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한 자들이다. 북한의 격변 사태를 원하지 않는 것은 중국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무턱대고 가는 유치한 심정이나 혹은 이렇게 뺀질대면서 자신의 문제를 방기하는 식으로 관리되어서 좋을 일이 없다. 그러니 목적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MB 정권에서 통일은 없다. 그런데 일본의 입장은 다르다. 제 1 단계와 제 2 단계의 한반도 팽창전략은 제 3 단계로 넘어가면 한반도 전체에 대한 친일화 전략으로 확장된다. 이미 부분적으로 그를 염두에 둔 전략도 펴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신조와 아소 다로. 그들의 동침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쿠다 야스오, 그리고 아소 다로로 이어진 지금, 아소의 향후 행적은 관심사항이다.)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은 성공한다고 본다. 한국의 친일정권은 그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적절한 수준에서 일본의 세력들과 보조를 맞추는 중이다. 이미 독자적인 외교역량을 편다는 자주외교는 사라졌다. 외부의 시각으로만 보자면 한국은 친일정권이 아니라 이미 일본의 세력에 예속된 정치집단이 있을 뿐이다. 국민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지만 이것이 실상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

아소 다로가 일본의 총리가 되고 난 이후 나오는 몇 가지 소식들을 살펴보자.

2008.2.1 아랍지역 4위의 이동통신사업자로 알려져 있는 이집트의 오라스콤(Orascom)은 북한 휴대전화 통신 운영사업권을 4년 독점, 25년 유효 라이센스 조건으로 획득한다. 이들은 경영진이나 혹은 그 가족의 명의로 류경호텔 공사 재개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권 획득 이전인 2007.7.13 북한의 평양명당무역회사와 상원시멘트 지분 50%를 1억 1,500만불에 인수하는 합영계약도 체결했다. 그런데 최근 이 건설 시멘트 사업을 주관하던 오라스콤건설산업을 프랑스 건축회사 나파이트에게 150억불에 매각했다고 알려진다.

재미난 것은 이 프랑스 회사의 파트너가 바로 일본의 ‘아소건설 ’이다. 아소 총리의 친형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실제 아소 다로도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소는 32세에 아소 시멘트의 사장을 역임한 바도 있다. 아소 가(家)는 충남 태안반도 안면도 일대에 일제강점기 그들 가문의 ‘왕국 ’을 건설하기 위한 대규모 산림훼손으로 비판 받고 있는 중이다. 일제 징용에 숱한 조선인이 희생된 아소탄광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아마도 일본과 원산, 평양을 잇는 라인의 개발에 착수했다고도 보여진다. 이런 일본의 움직임은 많다. 이들이 직접 하는 작업은 작업이고, 또 사냥개를 앞세운 작업은 작업대로 진행된다. 과거에 그랬듯이 그런 패턴이 움직인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MB정권이 통일을 말할 자격이 있는 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살아있는 시대에 통일을 보기란 어렵다고 판단된다. 지금과 같이 한국이 친일을 수용하는 정권과 사회가 되어 버린다면, 그 결과 는 분단의 고착화를 통해서만 그들의 ‘빨대 ’가 더 효율적으로 기능한다고 믿을 것이고, 자주적인 통일역량보다는 경제적인 침탈의 촉수를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뻗치는 수법이 앞으로 십여 년간 강하게 지속될 것이다. 그것은 당장 내년부터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다. 아소 가문의 경우에서 보듯이 상당한 수준의 작업들이 남한에 대해서처럼 북한에도 진행 중인 상태다. 일본식 방식이란 늘 그렇게 해왔었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때로 한국에서 진실처럼 횡행하는 한반도에 대한 장밋빛을 희망하고 예상하는 상식은 행위가 그에 맞게 따라주지 않은 상태에 머리 속에만 간직하고 있어서는 바로 그 자체가 ‘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혀 현실로는 타당성을 잃는 경우가 된다. 지난 십 년, 한 걸음도 그 수준에서 개선된 것은 남과 북 모두에서 없다. 오히려 불신만 더 키워진 형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얼치기 통일꾼 ’이나 혹은 백성들조차 잘 모르는 듯하다. ‘친일 사냥개 ’들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안다. 일본은 더더욱 잘 안다고 봐야 한다.

12. 사이비 종교전쟁#

종교 이야기를 해보자. 그 가운데서도 한국 사회의 ‘비루먹은 당나귀 ’보다 천박하다고 여겨지는 ‘정치기독교 ’를 봐야 한다. 백성을 진실로 생각하는 올바른 기독교 그룹과는 달리 이들을 우리는 ‘개독 ’이라 부르지만, 그마저도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기독교를 앞세운) 친일주구 찬양파 ’에 속한다. 그들은 사냥개를 찬양하는 새로운 유형의 종교를 만들어 내었다는 의미다. 막연히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면 ‘입에 거품을 무는 ’이른바 기독교 특유의 배타주의가 여기서는 작동을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그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친일의 앞잡이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 기독교 내의 자정능력은 비판 받아야 할 대상이다. 당연한 일이다.

친일정치세력이 한국 정치계를 비롯한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침투를 개시할 무렵,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지원 세력은 MB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이유로 그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교회는 ‘이명박 장로의 대선승리가 곧 하느님의 뜻이다 ’를 되뇌었고, 그것 자체로 이미 그에 참여한 기독교회, 목사, 교인은 정치인이 되었다. 거기까지는 집단의 중독성이라는 관점에서 수용이 가능했다. 어차피 끼리 집단은 성립되는 게 사회의 룰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뒤이어 터져 나왔다. 어차피 편 먹기를 했던 집단이긴 하지만 이들의 성격적 행태가 바로 ‘친일 ’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금새 빚어졌다. 기독교라는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은 신사참배(神社參拜)라는 그들의 토속적 우상숭배의 형식이나 또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배례(拜禮)가 그들과는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교묘하게 두 가지의 아전인수 방식의 해석을 곁들이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금칠을 하게 된다. 첫째, 일본으로부터는 경제살리기의 힘을 얻는 것으로 만족한다. 종교적인 걸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다. 일본에도 기독교 전파가 필요하다. 둘째,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국가다 . 그러므로 우리는 동맹국 우선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라는 논리였다.

작년 대선을 앞두고 친일발언이 극력 자제된 데는 이러한 그들 내의 약간 소란스런 토의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소되었다는 점이 코미디다. 이상할 정도로 자기변명의 논리를 강하게 대입시키는 것이 바로 한국에 뿌리내린 ‘개독 ’의 속성이다.

이런 상태에서 친일정치세력은 다시 두 가지로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선진화, 정상화에 대한 따라 배우기를 내건다. 그것이 바로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운운하는 것으로, 나아가 기독교 정신이야말로 작금 한국의 시대정신이라는 관점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시대정신 ’을 뉴라이트의 새로운 이름으로 정했다. 그야말로 ‘구’시대정신을 들고 새로움을 운운하는 격이다. )

금년을 지배하는 이들의 주장은 다시 두 가지로 재정립이 되어 갔다. 첫째, 기독교는 본래 우파다. 기독교 선교를 방해하는 곳은 인권이 없는 곳이며, 망해야 되는 정권이다. 둘째, 기독교는 일본으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친일이 아니라 지일이다라는 논리를 편다.

이들이 친일정치세력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보면, 종교와 정치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인가가 명확히 드러난다. 바로 정치다. 그래서 이들을 정치적인 친일주구 찬양파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정치를 통한 금권의 획득이라는 것이 바로 이들의 목표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을 절대 순수한 종교인으로 봐줄 수가 없다.

최악이라 할 수 있는 3대 요소가 결합해 버렸다. ‘친일 (혹은 친일의 사냥개) +정치 (그 중에서도 가장 저속한 정치) +(무자비한) 금권추구 ’라는 공식은 이들의 정신세계가 원래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사적 이익을 위한 금권으로 인해 더욱 병증이 깊어지고 있는 것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거기 ‘종교 ’라는 순수한 의미의 맑은 언어는 하나도 없다.

한기총을 비롯해서 서경석의 기독교사회책임, 김진홍의 뉴라이트, 금란교회 김홍도, 샘물교회 , 소망교회, 순복음교회 등 대형교회와 이에 동조하는 군소교회의 이른바 우파기독교라고 자신들을 정의하는 기독교 목사군들에게서 이 현상은 동일하게 보여진다. 이들에 겐 ‘대한민국 ’보다는 자신들이 정한 ‘3대 요소 ’가 바로 하느님이 되어 있다. 금권의 범주는 강만수 등에서 나타난 소망교회 인맥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권력지향은 ‘교회로부터 관직으로 ’라는 형식을 띤다. 거기서 다 추천이 되고 결정이 된다. 이 정도 수준이다 보니 종교편향성 이야기가 나오고 한 바탕 소란스러워졌지만, 이것이 전통적으로 한국이 인맥을 바탕하는 사회풍토가 있다고 나름 인정하는 습속에서 공개적으로 기독교를 드러내놓고 비호 하지 않는 한은 넘어가는 분위기도 나타난다. 요약하자면, 그들에게 종교는 완벽한 정치 경제의 도구가 되어 있다.

지난 6월 이후, 한국에서 종교전쟁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이 가진 이분법적 태도 때문이었다. 그들의 정치노선과 세력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은 설혹 기독교 내부에서조차도 ‘사탄 ’으로 불려졌다. 그러면서 은근히 친일은 그들이 용인해야 하는 가치로 자리잡았다. 그나마 사회안전망 구실을 하던 다수의 기독교 인사들은 이런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기존 가진 사회사업의 이권 등에 종사하거나 세습화가 문제로 대두된 대형교회, 그리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군소교회를 통합하는 단체결성 주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서히 그들 세력권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거부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권 추구를 위해 이에 결합한 사람들도 적지가 않다. 점차 그들은 거대 세력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를 포장한 친일매국세력이다.

(목잘린 단군상. 곳곳에는 ‘오직 예수 ’라고 시뻘건 락커칠 글씨가 도배된 곳도 있다. 불상 앞에도 ‘오직 예수! ’라고 십자가로 붉은 칠을 해둔 곳도 있다. 종교도 부정된다. 역사 도부정되고 오직 자기 종교만 산다? 이것이 순수하게 종족적 배타성의 산물이라면 인간이란 종[種]의 기원을 다시 새겨봐야 할 대목이 되었다.)

더군다나 ‘민족세력=민족종교 ’라는 형식으로 단군상 훼손 등의 행위도 벌어진다. 일종의 퍼포먼스다. 그것이 그들 내부 성원 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부 적 결속과 단합, 외부확장이라는 두 목적으로 동시에 추구 되는 기괴한 ‘가면극 ’으로 활용되었 다. 여기에 정치색은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활동이 저변에서나 상부에서 모두 그와 연동된다고 보면 이것도 정치 , 그 중에서도 아주 가식적인 정치행위 에 해당한 다.

사실상 한국 사회 내에서 종교전쟁은 벌어진 상태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이들이 바로 정치계마저 누르고 한국 내에서 ‘친일정치세력 ’을 정치와 그 밖에 분야까지 확장한 장본인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친일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는 종교에게는 불이익이 반드시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다. 한국 내에서 너무 많은 교회, 한정된 교인으로 인해 세력 확장의 한계를 느낀 한국 기독교가 해외선교를 구실로 물꼬를 틀었지만 샘물교회 사건 이후 주춤 하다가 친일정권 속의 역할을 가지고 완벽히 재개되는 양상이다. 그러니까 친일이건 무엇이건 다시 사적 이익을 선택 하면서 한국 내 강력한 정치세력화를 통하여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으로까지 인식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도금권을 활용한 한탕주의가 성행하기 시작한다. 지금 그들 내부에서 조차 경제적 정치적 이권을 두고 서로간의 갈등이 빚어질 정도다.

정권은 이들을 제지할 방법이 없다. 가뜩이나 낮은 지지율에서 이들 ‘홍위병 ’마저 자신들을 버릴 경우에는 지지도가 분해되어 버린다. MB정권의 미약한 지지도 가운데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크다. 결집력이 있다기 보다는 정치 기독교의 배타성이 현실적으로 대입되어 버린다. 무감각으로 불려도 좋을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기독교 이외에서는 통제된 언론으로 형성된 지지층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다수는 이에마저도 무관심하다. 이들이 기독교를 포장한 정치꾼들이건 어떻건 자신과 관계없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함이 넘친다. 그래서 이들은 더 기고만장 한다. 그들끼리 모여 기도하는 것을 보면 이건 서커스다. ‘기도 ’를 끝내고도 서로 웃지 않는 엄숙함은 한 편의 코미디를 연상하게 한다. 한국 기독교 그 가운데 최악의 집단이 된 정치기독교 의 수준이 딱 드러난다.

대운하 사업 재개에도 이들은 동원된다. 김진홍이 그렇고 서경석도 마찬가지다. 추부길이 가세하면서 덤벼든다. 이들의 자금원은? 마구잡이로 기업들에게 후원금을 요청한다 해도 지금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다른 곳에서 그랬다면 벌써 신문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일도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해치운다. 그래서 이들이 실세 정치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신들은 극력 친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하는 짓은 딱 그걸 위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붙여진 명칭이 친일사냥개를 재차 찬양하는 형태, ‘개의 개 ’인 셈이다. 뜻이 같은 것도 아니다. 그저 같다고 서로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 표현하게 옳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하고자 하는 소위 우파네트워크의 본질을 여기서 다 파악할 수 있다. 정치세력을 공고화하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다른 종교, 자기 편이 아닌 측을 고소 고발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정부의 행정행위, 기업의 사회봉사자금 등을 무조건 꺼내게 만들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쓴웃음이 나올 일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2008년 오늘의 현실이다. 서글픈 일이다.

천주교가 나오고 정치기독교가 아닌 기독교, 불교 등이 거리로도 나왔지만 이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 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바로 정치세력화 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입장이라는 차이다. 한 쪽에는 금권이 절대적으로 등에 엎혔 고 다른 쪽은 그들이 밥그릇을 확장하는 걸 굳이 탓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밥그릇을 건드리기 전에는. 충돌이 있었지만 해소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서로 적절한 선에서 자신들의 선을 지킨다. 공정하려고 해도, 종교계 가 이미 세속화된 상태에서 윗선의 결정은 복잡하다. 이건 거의 양아치 집단과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어느 종교인의 말도 생각난다. 그렇지만 이들의 활동은 대단히 계산적이다. 그들은 정권이 추구하는 친일의 강력한 협조자이기에 지금은 정권이 가진 금권을 사용 할 자격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한 차례 종교편향으로 사회 전체가 들썩이며 종교전쟁까지 이른 상태이지만 그들이 동원한 공권력에 미치지 않는 ‘집단 ’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점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 권력의 힘과 통제된 언론까지 장악하는 독재형의 발걸음에 다른 종교들이 대체로 굴복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시점이다. 그 이면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정권의 힘이 종교 내부의 갈등이나 혹은 불법에 대해 개입을 했던 흔적마저 있다. 이른바 정보전쟁이다. 편 먹기는 정권과 개독이었지 다른 종교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것은 전쟁에 해당한다. 종교전쟁이었다.

과거 반독재나 민주 투쟁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공격에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에서 전쟁이 성립되기도 어렵다. 그걸 다른 종교인들은 ‘두고 보자! ’고 한다. 가만히 이 현상을 살펴 보면, 한국 사회 와 시대를 제대로 지켜오던 안전망에서 아무래도 종교는 빼놓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시점 같다.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는 말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친일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인지, 아니면 권력이 두려운 것인지 구분도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이 비겁해진 종교가 한국에 있는 듯하다.

13. 수탈전선의 사냥개 놀음#

‘전선 ’은 정확하게 형성되었다. 전쟁의 제 1 법칙, 적은 무조건 패퇴시켜야 한다는 것이 있다. 일본의 팽창주의 세력과 한국에서 이에 동조한 친일매국세력, 한국의 민초간에는 이렇게 아주 뚜렷한 하나의 구분되는 선(線)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각(知覺)하지 못하는 것 이오히려 대다수 한국의 국민들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냥개를 활용한 침탈 방식은 매우 전통적인 수법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기획만으로도 본다면, 효율이 아주 높 고 현장에서 잘 먹힌다. 친일정권의 수립까지 완료된 상황에서 친일정치세력은 사냥개로써는 더 이상 유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기획자의 의도를 잘 따르고 있다. 그들도 신난 듯하다. 하는 일마다 그들의 의도대로 되고 있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1997년 IMF 시기를 겪으면서 호남지역을 모태로 한 또 하나의 민족기업으로 불리던 해태그룹은 해체되었다. 당시 박건배 회장은 탈세 등의 협의로 실형까지 선고 받았고 법정관리 에 이어 그룹 해체를 맞는다. 개인적으로 볼 때, 박회장은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중국 조선족 사회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절감하고 어떻게든 한국과의 좋은 관계유지가 가능한 방안을 찾는 데 열심이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민족주의 성향은 그와 그의 기업이 공격 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고 본다. 물론 사업상의 공과는 분명 있다.

그러나 IMF 시기 한국은 많은 민족성향의 기업 가운데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던 세력을 잃었다. 그 여파가 지금 아주 강하게 밀려오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지난 십 년,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관했던 책임까지 물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닌 바로 시대의 ‘안전망 ’에 대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

2000년 롯데그룹은 아사히 맥주와 컨소시움을 이루어 해태음료를 인수하였다. 신문의 하루 경제면 일면을 차지할 수준의 이 사실은 그 후 조용히 묻혔지만 당시 아사히 맥주의 서울 등장은 많은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후소샤 새역사교과서의 공개적인 후원기업이면서 야스쿠니 참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업. 이것이 바로 아사히 맥주의 실체다. 당시 새역모 지지자 약 300여명 가운데서 단연 돋보인 인물이 아사히 맥주 전 회장이며 명예고문을 맡았던 나카조 다카노리(中條高德) 였다 . 물론 이 새역모 지지에는 미쯔비시, 쓰미토모, 가와사키, 도시바, 이쓰쯔 등 일본의 내노라 하는 제국주의 팽창시대에 덩치를 키운 대기업 과 그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들이 선택한 가장 편한 파트너십은 바로 롯데였다.

IMF 당시 부채비율이 적고 현금 유동성이 가장 큰 상태에서 재벌그룹 중 유일하게 자금난을 겪지 않은 기업으로 롯데를 꼽는다. 그 후 10년 동안 롯데그룹은 당시 6개이던 백화점을 23개로 확장했고, 1998.4 1호점(강변점)을 내었던 롯데마트는 현재 53개의 점포망을 가지고 있다 .

(제2롯데월드와 같은 공사에 ‘로비 ’가 없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반대하던 공군참모총장까지 경질하고 밀어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볼 일은 이 롯데월드를 구실로 해서 일본발로 움직여지는 자금이다. 이것은 하나의 ‘꺼리 ’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경제역학으로 보면 말이다. )

9월 경제위기설로 논란이 뜨거울 때, 롯데는 오히려 제 2 롯데월드 건설과 관련하여 청와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군용기 항로조정 등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적극 검토하는 방향으로 굳혀지는 이권 획득에 열심이었다. 공군참모총장이 경질되고 롯데월드는 이제 프로젝트 자체가 이륙직전이다. 거기다가 지난 9월 2%대의 초저금리를 일본에서 6천억 원 상당 조달하는데도 성공했다.

호텔롯데, 호남석유화학,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기공 등 계열사 대부분이 일본발 자금원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다. 물론 일본발이었고, 그 자금원도 그렇게 드러난 것처럼 투명하지는 않다. 밝혀진 소스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에서도 이미 자본축적은 이루어져 있는 상태다. 2006년 롯데쇼핑의 상장으로 당시 3조 6,000억원의 현금자산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에서 롯데그룹은 호텔롯데를 지주회사로 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롯데홀딩스가 19.2%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사실상 롯데호텔 지분의 100%를 일본롯데에서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실상 일본기업이 한국에 있다고 봐야 한다.

(2008.9.22 현재 롯데의 일본발 자금 확보 리스트)

 

2008.6.25 신동아와 롯데그룹의 황태자인 신동빈 부회장간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1977년 아오아먀 카쿠인대를 졸업하고 미 컬럼비아 대에서 MBA를 했다. 그리고는 노무라 증권에 1980년 입사, 1988.2까지 노무라 영국지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의 경영철학을 신 부회장이 밝힌 바에 의하면 이런 것이다.

“기업가는 경영에만 집중해야 한다. 돈을 벌어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 ”

노무라 증권, 노무라 연구소는 일본의 ‘세력 ’이 활용하는 매우 강력한 브레인 그룹에 해당한다는 건 대체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심지어 한국 내 주요기업 수 천개의 인맥까지도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그만한 관리를 하는 곳은 사실상 없고 보면, 이것은 누군가 빤히 안방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 살아온 꼴이다. 그곳으로 보낸 신격호의 결정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생각해본다. 그의 결정이었을까, 아니면 ‘그들 ’의 요구였을까? 그 둘이 합쳐진 것일까? 복잡하다.

아마도 한국 내의 그룹 가운데서 가장 짜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롯데라는 소문은 틀린 게 아닐 것이다. 롯데는 최근 신사업으로 금융, 석유화학 쪽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친일 ’은 이처럼 기업의 얼굴로도 다가온다. 이를테면 일본 베이스의 기업 가운데서 롯데는 공식적인 일본 극우와 우익 , 즉, 세력 을 연결하는 한 채널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한 평가다. 차라리 기업의 얼굴로 공개적인 창구가 되는 것은 뉴라이트 집단과 같은 사냥개보다 좋게 보이는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서글프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꽤나 무서운 공식적인 방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러한 활동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정당한 기업행위이지만, 김진홍, 서경석, 신지호, 안병직, 이영훈 , 박효종 류의 활동은 그야말로 사냥개라는 표현 이상으로 그들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박삼구 회장이 한일해저터널을 뚫자고 외치면서 친일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에서 느끼는 비애감도 이미 다른 기업들이 그런 노선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버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 점에서는 다른 기업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들 나름으로 이런 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한다. 기업은 아무리 정의를 떠들어도 죽지 않으려고 모든 선택을 다 하는 기계다. 친일마저도 기업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도 선택 가능한 대안이 되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러나 수탈전선은 세계금융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 속에서 서민들에게 집중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권이 그렇게 몰고 가고 있다는 걸 쉽게 눈치챈다. 대기업과의 프랜들리, 3% 절대 부자층과 기득권에 대한 지나친 배려, 중소기업에 대한 무관심, 서민에 대한 욱죄임 강화 등의 현상은 이 정권이 일단 경제라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보편화를 꾀하고, 그를 통하여 국민을 노예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한국 내에서 이른바 민족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남아있지 않다. IMF 이후 금융시장의 개방 이후, 주요기업은 외국인 지분율이 거의 절반을 넘기는 곳이 많다. 한국경제 자체가 국제화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구도 자체로만 평가한다면 한국경제는 더욱 예속화되는 상태가 되어 있다. 당연히 민족기업이 뿌리내릴 공간은 없다.

이 상태에서 지난 9월 이후 묘한 분위기 하나가 감지되었고 그것은 지금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

대북사업의 창구이자 사업자로 지난 10년을 이끌어오던 현대그룹의 현대아산 을누군가 매입하려고 시도한 흔적이다. 이것은 최고 경영진까지 타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부에서 다각적인 검토과정에서 포착된 하나의 사건이지만, 7월 금강산 피격사건 이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11월부터 는 상당수 직원들이 이른바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를 누가 매입하려고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 내용이다.

만일 이것이 일본 발 혹은 그와 유사한 접근 시도였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

일본의 입장에서 금강산과 개성은 매우 유쾌하지 못한 장소다. 지난 십 년, 그곳의 효용성은 둘째치고 남북한 간의 접합이 가능한 요소로 유지되어온 것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 지구의 생산활동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 둘 모두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는 현대아산이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곧 이 사업의 책임자 변경과 협의과정에서 변질 또는 단절을 의미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현대가 아닌 다른 사업자를 인정하기가 쉽지가 않 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조건은 매우 까다로울 것으로 보여진 다. 그 사업에 정주영-정몽헌이라는 두 사람의 목숨값이 달려 있고, 그것은 사업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정치행위이자 또한 현대일가의 의지가 서린 곳이기도 하기에 이미 경제적 대상으로만 파악하기도 어렵다. 북한 군부가 개성공단의 폐쇄 문제에 직접 조사를 진행하 고 강력한 통제를 하겠다는 전통문을 보내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곳은 아직 ‘정치 ’의 땅이지 ‘경제 ’는 아니다.

그런데도 매입의사를 타진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며, 그것이 마치 검은 머리 외국인처럼 일본 발 한국인이라면 이야기는 흥미로움을 떠난 것이다.

9월경 이후, 다수의 한국기업들이 일본 발 자금 사용에 대한 타진을 받았다. 엔케리 자금이 회수되는 과정에서 엔화 대 달러 비율이 요동치는 현상 가운데서 제안된 이러한 움직임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접촉이 이루어졌다. 이를 단순한 경영행위로만 보기에 석연치 않은 것은 이 자금원의 대부분이 일본의 극우와 우익 세력을 근간으로 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적게는 약 한화 100조원에서 130조원 수준이 한국에 투입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흘러 다닌다. 자금원이 어디인지조차 잘 밝혀지지 않는다. 국제금융을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이런 형식의 자본은 바로 정치적 목적을 띤 자금, 철저하게 그런 용도로 가는 비자금의 냄새가 난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이건 일본경제가 어렵다거니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자금이야말로 그들 ‘세력 ’이 사용하는 통치자금이다.

현재의 코드는 확실히 ‘경제 ’다. 그것으로부터 정치와 사회를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시대를 포획하려는 노력에 해당한다. 돈으로 시대를 산다? 가능한가? 가능하게 접근하는 중이다. 막을 수 있는가? 막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이미 그에 동조하는 세력도 늘어간다. 결국 10%를 위한 움직임이다. 90% 국민은 여기에서는 완전히 멍충이나 알지 못하는 메트릭스의 노예가 된다.

이면에 숨겨진 사실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겨를도 없는 경제위기의 긴박한 상황에서 현금유동성과 투자, 그리고 신사업의 전개, 정책사업의 결정과 해외투자유입, 그리고 공기업 매각과 민영화 시도라는 이 방안이 함께 어우러지는 단계다. 그 속에 일본이 있다. 사냥개들이 아주 발 빠르게 움직일 시기이고, 그것은 침탈 가능한 요소를 점검하는 첫 시발점이 될 것이다. 착착 계획에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14. 얼치기, ‘똘추 ’, 헛똑똑이가 더 힘센 나라에 살다.#

미래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은 항상 공존한다. 그러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건조 하다 할 수준에서 하는 게 옳다.

내가 일본의 침탈 노선에 대한 이야기를 밖으로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30일부터다. 극히 소수에게 이 관련 내용을 전달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은 그 때 당시 정리된 것이 아니라 이미 14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들을 관찰하면서 얻어진 결과였다. 거기에는 낙관과 비관이라는 양자택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침략과 대응 ’이라는 전쟁의 룰만 존재했다. 결과는 ? 불행하게도 한국의 오늘 전 사회 역량으로도 일단 침략을 막아내거나 대응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전제로부터 이 이야기는 출발했다는 걸 미리 밝힌다. 졌다고 인정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로부터 다양한 ‘변수찾기 ’에 골몰했었다. 이를테면 이 상황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겠으나 흔들 수 있는 방안, 그 속에서 틈을 찾을 수 없나를 보는 시도였던 셈이다. 쉽지 않았다. 그만큼 상대는 ‘친일의 재구성 ’자체를 너무도 탄탄하게 완성한 상태였고, 이미 정치세력으로 군림하는 단계였기에 부딪힘도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그들이 주장하는 ‘국민화합 ’은 듣기에 좋으나 사실상 ‘국민의 친일화 ’였고,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국민의 순 복종 요구 ’라고 하는 편이 옳은 시점이다.

촛불민심의 좌절은 예정된 것이었다. 집단지성이라고 칭찬의 띄우기 한 수에 급속하게 추락하고 말았다. 그 정도 수준의 역량과 대응으로 이들이 준비한 것을 뛰어넘는 것은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친일정권은 두 차례의 담화와 사과라는 형식으로 전형적인 의도된 물타기를 시도하면서 슬그머니 뒤로는 초강수의 강압 수법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공권력이 시도 때도 없이 동원되었다. 거기에는 전형적인 선전선동의 장악이라는 여론몰이도 한 몫을 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친일정치세력이 가진 묘한 저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상대적으로 순수했거나 혹은 마음만 있지 전략은 부재한 촛불민심은 이리저리 끌려만 다니다가 제풀에 지친 꼴이 되고 말았다.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의 등장도 이들 친일매국세력의 밀어붙이기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그들이 부인해도 현상은 그렇다. 부인하지 못한다.) 오히려 민심이 더욱 좌절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점으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상식 적 감성적 접근과 대응 이 초래한 예정된 수준의 패퇴다.

촛불이 등장한 지난 반 년 사이 나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보았다. 현재도 그 패턴에 대한 관찰은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 있었던 가장 최악의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해보고자 하는 뜻은 간단하다. 그 함정에는 빠지지 않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 때문이다. 밑바닥으로부터 출발한 지각(知覺)된 상황을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우선 ‘얼치기 ’가 있다.

사전적인 해석으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나 조금씩 뒤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아는 것은 많은 데 본질을 모르는 경우에도 이런 용어는 사용된다. 여기서도 그 뜻으로 보면 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정 수준의 나이를 먹으면 고집이 생긴다. 사고가 고착화 되는 셈이다. 자신이 믿는 것을 끝까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념이라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할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이런 대화를 한 번 보자.

“친일은 좋은 겁니까, 아닙니까? ”

“그거야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지. ”

“아니, 그 사람들이 다시 한국을 자기네들의 식민지 노예처럼 부리려고 한다는데 거기 동조하는 걸 말하지요. ”

“그럴 리가 있나! ”

“그런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

“에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말하면 되나! ”

이 대화는 여러 각도로 변형 되어 질의와 응답 으로 이어졌지만 결과는 항상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고정인식이 자리했다. 진지한 토의가 불가능했지만 그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나를 아주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힘 빼지 말고 딴 거나 해야지. 사업하고 장사하고 돈 버는 거 말이야. ”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지식 수준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해서 설득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이 대화 패턴은 그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부류들이 많았다. 오히려 마지막 말은 거의 한결 같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똘추 ’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또라이 ’라는 말에 ‘추하다 ’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말귀 못 알아듣는 답답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거 말이야, 일본이 돈 들고 온다면 우리가 반겨야지. 어차피 국제사회에서 노는 물인데, 일본돈 미국돈 가릴 것 있나? 우리만 잘살면 되는 거지. 그 놈들이 돈 가지고 여기 투자하면 돈 함부로 빼갈 수 있나? 우리가 잘 쓰면 되는 거지. 거름도 잘 쓰면 돈이 돼! ”

지식과 관념은 나이가 먹어 갈수록 더 성숙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많이 파괴가 된다. 이를테면 이 패턴이야말로 MB가 아니면 박근혜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유형이다.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보호본능과 함께 자신감을 펴는 경우다. 다른 상황을 알아볼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추하게 느껴지는 부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말투를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바꾸어봐도 내용은 똑같다.

(3S 공화국. 우리는 자꾸만 어딘가에 빨려 들고 있다. 그래서 건조한 진실과는 자꾸 멀어진다. 그것은 때로 심각하게 조장되기도 한다. 마치 최면에 걸려든 것처럼 인지부조화는 깊어진다.)

‘헛똑똑이 ’는 지식을 가진 실체다. 그런데 잘못 배운 경우다. 이념이나 혹은 개념을 떠나서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이해에 포커스가 맞추어진다.

“우리나라가 말이야, 그래도 연간 최종수요로만 봐도 소비가 600조가 넘고, 투자도 근 300조야. 수출도 400조는 너끈히 하잖아. 그런데 일본에서 돈 100조 들어온다고 해서 그걸 감당 못할 일은 없어. 그러니까 일본에서 1,000억불 정도 가지고도 서울 잡아먹지 못하니 안심해. 모르지 한 3,000억불 들어와서 헤집고 다니면 표시가 나기는 하려나? ”

경제지표에 대한 약간 이해가 가진 절묘한 함정에 빠졌다. 객관적 대비는 되지 않지만 IMF 당시 200억불에 모든 금융시장이 해체가 되었고, 산업구조 조정은 물론이고 사회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유동성이 가진 함정 가운데 최악은 단 돈 1달러가 없어도 파산은 파산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국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른바 대마불사론이 아직도 존재한다. 한 번 깨어지고도 정신을 못 차리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적어도 일본의 침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추론은 금물이다. 지금은 시작된 단계가 아니라 한참 진행 중이고 또한 정착이 아니라 고착화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때로는 그저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서 펴는 논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서 위에서 언급된 저런 유형의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아주 높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해야 하는 안전판은 원래 정부가 가진 것이지만, 친일정권은 그것을 스스로 무용지물화 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오히려 막아야 될 기관과 사람이 그것을 외면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것을 시대조류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다.

어쩌면 이 상황은 이미 한국의 현 시대, 사회가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게 기획되고 설계된 국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지 않으면 1910년 당시 대한제국이 겪었던 그 지식인들의 입장보다 못한 인식으로 이 시대를 산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런 유형의 사람, 그보다 약간 차등이 있다고 해도 거의 엇비슷한 유형이 늘어난 상태다. 그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않는 한, 일본 기획자가 당긴 화살을 피해나갈 재간은 없는 한국 사회의 오늘이다.

15. 기회주의자들의 아귀다툼#

친일정권이 들어서자 친일정치세력은 본격적으로 사적 이익을 위한 매국을 서슴지 않을 기세다. 이들에게는 주둥이로 하는 역사와 시대는 있지만 정작 그들에게 애국과 애족이란 단어의 의미를 물으면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이 훼절(毁節)했음을 안다.

11월 6일, 주요언론들에서 나온 기가 막힌 기사의 제목들이다.

“김진홍 뉴라이트 재단 상임이사장 ‘내년 (대운하) 첫 삽 떠야 ’”

“안국포럼 의원 7명 ‘지역균형 대안은 대운하 뿐 ’”

“박형준, ‘대운하 미뤄진 적 없어 ’”

가만히 보면, 이들에게 대운하는 거의 신앙처럼 비춰진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런 집착을 만들어내는가? 이 또한 간단하다. 원래 그리하려고 모든 계획을 몰아오고 있었다. 전형적인 토끼몰이 방식이다.

대운하의 메커니즘은 한국 경제의 포크레인 화 (化)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그렇게 각도를 본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보질 않는다. 한 템포가 일반의 의도를 넘어서 있다. 한국 국민 자체를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장기적 건설계획에 함몰되게 만들면서 그 속에서 ‘그들 ’의 이익 과 국민의 둔감함 을 챙기려는 속셈 이다 . 그래서 “욕 먹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한다 ”는 논리가 등장한다. 이건 대체로 급할 때 나오는 용어다. 대운하야말로 국민적인 컨센서스가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사업 중에 하나다. 왜 고집을 피우고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대운하로부터 한일해저터널로도 이어진다. 건설이라는 컨셉 자체만을 이해하는 MB가 박근혜를 제치고 뉴라이트 집단의 힘을 빌어 대선후보가 되었던 이유기도 하다. 활용하는 방향은 그 때 이미 정해졌었다. 그걸 국민들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실질적 주역이었던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 소식도 들린다. 그는 아마도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공무원이란 모름지기 정권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 국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물론 나쁜 쪽이다. 그가 국회 청문회에서 했던 “쇠고기 협상은 미국의 선물 ”이라는 말은 바로 그 자체가 미국을 향한 사대주의에 빠진 외교관료의 모든 것을 보여준 말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외교부로 복귀해서 ‘외교역량평가단장 ’이라는 이름도 거창한, 그리고 어떻게 일할 건지 뻔히 보이는 자리에 특채가 되었다. 불행한 일이다.

(친일의 가식. 이 소녀는 과연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친일 속에서 반일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거짓은 이렇게 성숙이 아주 빠르게, 잘 포장되어 우리 앞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 역사에서 묘한 위치에서 기록될 것이 틀림이 없다. 과거와 다른 것은 오늘의 시대는 기록이 아주 세밀하게 작성 되어진다는 점이다. 누군가에 의해, 그는 그렇게 기록될 사람처럼 보인다.

코미디는 쭉 이어진다.

조갑제. 그는 앞서 시대 시리즈에서도 보았듯이 반공보수 우익이라는 간판 아래서 친일을 마구잡이로 수용하면서 이제 3류 글쟁이 수준에 머물기 시작했다. 그가 즐겨 해오던 ‘(무엇이건) 기록하기 ’와 ‘(무엇이건) 사실에 입각하기 ’라는 원칙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양아치에 정신병자 수준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사실 ’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개그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도 별로 통하지 않는다. 그런 그 에게 전여옥은 ‘신세를 졌다 ’고 했다. 초록이 동색이다.

버락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은 그에게 심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거의 패닉상태의 글들이 터져 나온다. 오바마를 좌파로 부르지 말자는 글에서는 연민의 정마저 느껴진다. 그 글이 반향을 일으키자 그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미국정부의 힘을 빌어 한국 안에서 뭘 해보겠다는 세력은 좌이건 우이건 사대주의자 들이다. ”

“한반도의 운명은 한국민이 결정한다. ”

“우리의 운명은 우리 힘으로 결정한다. ”

그는 일본에 대해 서는 지금껏 ‘친일이 친북보다 낫다 ’고 주장해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과 일본이 선진국이며 우리 운명의 동반자라는 표현까지도 사용했던 자다. 그랬던 그가 이제 사대주의와 자주적 운명을 거론한다. 그는 한글의 복잡한 어의(語義)를 잘 골라서 사용한다고 스스로는 생각할지 모르나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늘 모순된 상태가 등장을 한다. 정신박약(精神薄弱)같다.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은 친일입니까? 그것은 사대주의와 어떻게 다른가요? 한반도와 우리의 운명을 일본의 손에 맡기고자 시도했던 적은 없었나요? 그런 세력과 한 이불을 덮고 잔 적은 진정 없었던가요? ”

정작 일본은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버락 오바마의 등장 이후를 경계한다. 미국의 경제사정이 결코 단기 내 회복이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는 와중에서 어떤 생존법을 선택할 것인가에 골몰한다. 당연히 그들의 계산법에 한반도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바로 일본의 극우와 우익, 그리고 그 조정자와 기획자라는 세력을 바탕으로 한다. 쉽게 꿈을 버릴 자들이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이런 상황에서 남과 북의 관계는 서로가 너무 엉뚱한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우스운 꼴이라는 느낌도 들 수 있다. 그 점에서 보면, 한반도 문제의 주도세력은 남과 북 가운데서 전혀 남쪽이 되지 못할 여건이 조성되어 버렸다. 이미 친일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어떻게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한반도 문제 접근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니 대화하자고 하면서도 요리조리 도망을 친다. 그걸 ‘보수 ’와 ‘원칙 ’으로 포장을 한다. 시간벌기다. 자주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운명의 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친일정권까지, 나아가 친일정치세력의 판도가 정착의 단계로부터 고착화, 그리고 정상화 단계까지 이르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 문제의 해법을 서울로부터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북한 또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이 사태를 방관하는 것은 남한의 친일을 공조하는 것으로 평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니 강하게 들이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도 계속 강공을 퍼붓는다.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들 같다. 오히려 비바람을 몰아치면 옷 단추를 채워 버린다. 원래 옷을 벗어볼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은 더 겹쳐 입는다. 그걸 모른다면? 그건 그들의 시대 판단력 미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 나름대로는 생각이 있다 할지 몰라도 결과는 남한의 친일화를 가속화 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위가 되고 있다.

오바마의 당선에 허겁지겁 한미 공조를 통한 대북정책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도 속보이는 짓이다. 미국은 그들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북한을 포기하기 어렵다. 일본, 중국이란 변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까지 고려해주면서 동북아시아에 있어 그들의 입지를 깨트리는 어리석음을 선택할 개연성은 거의 전무하게 보인다. 한미간에 원화/달러 간의 통화스왑이 결정된 이후, 한국 경제는 정책뿐만 아니라 그 행보에서도 미국의 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강하게 결속된 커플링이다. 원래도 그랬지만 더 심해진 셈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IMF로 공여되는 일본 자금이 있고, 별도로 중국, 일본과의 원화/엔, 위엔의 통화스왑도 진행 중이다. 이 부분에서는 미국이 일본의 얼굴마담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그 대가도 있다. 그래서 IMF에 10조엔도 지출한다. 큰 마음 먹은 게 아니라 그렇게 저렇게 담합국면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흔히 음모론을 운운하면서 서 푼어치 지식을 그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은 국가간의 겉모습도 중요하고, 또 이면의 세력간의 흐름도 더 중요한 시기다. 모른다면 어쩔 수 없이 대응하지 못한다. 안다고 해도 판단에 따른 행동을 하지 못하면, 세력을 읽을 뿐이지 그에 저항하지도 못한다. 그 일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정권인데, 현재의 한국 을 장악한 정권은 오히려 이를 친일을 중심으로 친미와 결합된 수구(守舊)로만 모두 해결하려고 한다. 방법이 나올 턱이 없다.

그러니 이 비밀이 알려질까 더 두려워서 유언비어 유포를 막는다는 미명 하에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유형의 ‘인터넷 통제 ’를 법제화 하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게 단속한다는 중국마저도 이것은 법의 영역이 아니라 암묵적인 처리를 할 뿐인데, 버젓이 드러내놓고 법으로 만든다고 하는 발상법 자체는 경악 수준을 넘어 한편 유치하기까지 하다.

언론장악에 대한 방송의 반발이 만만치가 않다. YTN이 여전히 100여일 넘는 농성을 이어가고, KBS도 관치개편에 반발해서 기자, PD들이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벌써 다수의 희생자가 나온다. 정권의 야욕으로 인한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조치가 인력과 사회 역량의 낭비 를 확산하며 자행되고 있다.

사회가 어렴풋하게 친일정권과 세력의 의도를 눈치채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현재의 문제와 어떻게 연동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은 듯하다. 정보의 빈곤도 그렇지만 이들이 얼마나 의도를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그 내부에서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치밀했다는 반증이다.

그것을 믿고 친일정치세력이 본격적인 매국에 나서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백성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시대도 없다. 자신들이 믿는 것이라고는 현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반발이나 저항을 강력하게 받을 경우는 후퇴할 구석이 없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므로 강압도 순리적이지 않다. 무리가 가니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파열음이다.

그들 내부에서도 금권에 해당하는 자리를 둔 다툼이 격렬해지는 모양이다. 뉴라이트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김진홍까지도 규탄 받 았던 조짐도 있다. 그는 다시 이를 회복했다. 그가 조정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란은 재물을 앞에 둔 도적떼들끼리의 다툼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도 몹시 치열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힘이 강해질수록 드러나게 될 내부의 분열은 있다는 얘기다.

건설사에 대한 4등급의 구분지원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건설회사들은 분양가 60% 조건의 정부환매를 요청하기까지 이른다. 이건 정상적인 경제행위가 아니라 딱 잘라서 ‘로비전 ’이 벌어졌다고 보면 된다.

혹자는 경제지표를 백날 뒤져보느니 그들 친일정치세력의 누가 어떤 자리로 움직였는가에 따라 주식도 사고 투자도 하면 틀림이 없을 거라는 예측까지 내놓는다. 정치가 경제를 장악한 잣대가 된 것이 아니라 세력이 경제를 포획한 상태의 기준점이다. 이것도 결코 틀린 이야기가 아니란 것은 곧 증명될 전망이다. 경제학은 한국에서 일단 무너졌다. 정치가 실물경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는 정치에 자양분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 되는 중이다.

박근혜가 수도권 편중개발뿐만 아니라 지방의 균형발전을 거론하고 나서자 공성진이 이제와 그렇게 말하는가라고 맞받아치고 나왔다. 자중지란이 벌어진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다. 서로가 노선이 조금씩은 다르다. 그렇다고 확 갈라서지도 못한다. 작년부터 이어져온 일련의 과정에 그들 모두가 친일매국정치세력을 자신들의 배후에 두었고, 이제 그들이 앞줄에 나와서 설치는 환경에서 어떻게 내부 분열이 완전한 갈라서기로 표출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특단의 상황이 오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 중에는 암묵적인 ‘기대 ’도 한 몫을 한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정국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결정을 내리는 것이 지연된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대체로 팬딩 국면으로 치닫는다. 소소한 갈등이 큰 파국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 영악하면서도 포장에 능숙한 ‘기회주의자 ’의 참모습이다. 그 판을 만들어낸 상태에서 국민들을 도저히 빠져 나오기 어려운 낙오자의 그룹들 로양산 해놓고 그제서야 계몽하고 다루어나가겠다는 고약한 심보가 악취를 온 사방에 풍기는 하루 가 이어진다 .

16. 영웅은 이 땅에 살지 못한다.#

2008.11.5 나는 평화방송을 비롯한 몇몇 언론을 체크하면서 강한 확신을 하게 되었다. 친일매국세력은 정치이건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서울의 촉수를 ‘김진홍 ’으로 선정해두었다는 사실을 재확인 하였다. 그가 급하게, 그러나 급하지 않은 척하면서 나온 배경은 차치하고, 그는 확실히 11월에 일본 기획자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추부길의 ‘한국건설업 GDP 30% ’발언과 대운하 추진에 이어 김진홍은 대운하부터 언급을 시작한다.

“대운하 사업은 절대적으로 해야 하는 사안이다. 강경하게 지지한다. ”

그가 ‘강경 ’(强硬)을 들먹일 정도로 이 사안 자체가 여기서 꺾이면 큰 일이라는 판단은 옳은 듯하다. 시한도 정했다. 내년부터 첫 삽을 떠야 한다는 거다. 그의 논조는 MB를 단순하게 지원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고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았다. 친일정치세력의 수장다운 표현법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그의 상위인 일본 기획자의 지시를 받았다는 판단을 강하게 확인 하기에 족했다.

박근혜가 균형발전에 대한 반발을 한 것을 두고도 그는 말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작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그가 MB-박근혜 가운데 선택의 키를 행사했었고 앞으로도 박근혜는 자신의 손아귀에 있어야만 차기를 노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 수준으로 봐도 무방했다.

“너무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닐까요? ”

다음 차례는 ‘조갑제 구하기 ’였다. 거의 패닉에 빠져버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리지 않는다면 한국 내에 어렵게 형성해둔 ‘반공 극우보수 집단 ’을 놓칠 우려가 있다는 불안감 이그에게도 엿보였다. 그래서인지 말투 자체가 아예 우기기 수준으로 흘렀다.

(한반도 대운하. 이것은 이 시점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절대변수로 나타났다. 추진하는 자, 막는 민심, 그래도 추진해야 하는 자가 뒤섞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국 쪽 대북정책이 수정될 필요는 있을까? 서로 비슷한 것 같다. ”

“미국 뭐 바뀌는데 우리가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된다, 그런 거는 성급한 판단 아닐까 생각한다. ”

이 정도에 이르면 그는 대북 전문가정도가 아니다. 김진홍은 90년대부터 북한 측과의 접촉을 통해 북한 돕기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의 두레 공동체의 ‘사세 확장 ’을 할 수 있었다. 그가 당시에 했던 이른바 ‘설교 ’기록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거의 눈물로 호소할 지경이었다. 당시 그는 한 번 북측 사람을 만나면 선뜻 몇 만 불을 보태 쓰라고 내놓고 간 적도 있을 정도로 소위 ‘화통한 ’인물이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그는 서서히 일본으로 기울어졌다. 일본태생의 한계인지 혹은 이점인지는 모를 일이다.

11월 4일 미 대선을 경계로 해서 일본의 조급증과 한국 내 친일의 재구성을 통해 형성된 친일매국전선 둘 다가 일정 수준 흔들렸다는 징조를 김진홍은 확인해준 꼴이 되었지만, 한국의 반응은 전혀 엉뚱한 쪽으로 흘렀다. 그의 행위가 마땅하게 여겨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소위 이랬다 저랬다 하는 ‘또라이 ’라는 쪽으로만 비난하는 데 열중 하는 편이다 . 물론 김진홍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찬양 ’했다. 두레교회, 두레공동체가 컬트화 된 것은 아닌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선명하게 그의 행보가 보여지는 시점은 자주 올 듯하다. 그는 그 역할을 한다.

이 거대한 두 개의 흐름은 아직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한국 보수우익의 좌장(座長)을 해보려고 하는 김진홍은 사실상 일본 기획자의 지시를 받는 ‘친일매국세력의 한국 내 사냥개 수괴(首魁) ’로 이미 등극한 상태 다. 그 점에 대한 명확한 인지를 하지 못하다 보니 생기는 간극(間隙)이 나타난 다.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닐 정도로 이 현상 자체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가 건드린 세 가지의 주제야 말로 바로 오늘 한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한국에는 왜 이 시점에 ‘영웅 ’이 없는가?

MB는 간웅(奸雄)의 수준이라도 된다고 보는가?

김진홍은 도대체 뭐라 이름 붙이는 것이 좋을까?

나는 사냥개만 우르르 몰고 다니는 사냥꾼이 산중의 짐승들과 또는 산과 들판의 섭리(攝理)를 이해한다고 보지 않는다. 진정한 사냥꾼은 나중에 가서는 손에 아무 무기 도 들려져 있지 않지만, 그 수준을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사냥개를 버리고 산과 들,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냥꾼이 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 스스로도 사냥개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으니, 이걸 굳이 이기주의라고 표현하는 것마저 어색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시대에서 이제 완전하게 영웅이 될 수 없는 자로 세세 년년 지워질 수 없는 낙인(烙印)이 찍혔다. ‘그’는 다수이고 ‘매국노 ’다.

지금까지 동원된 ‘개’의 면면을 보자.

안병직으로부터 출발해서 한승조, 조갑제, 지만원으로 이어져서 이영훈, 박효종으로 가더니 이내 김진홍, 서경석이 출몰하여 본색을 드러내고, 신지호, 추부길로 확산되다가 마침내는 정치권에서조차 박희태, 홍준표, 나경원, 전여옥이 나오고 ….

이러한 땅에서 진정한 영웅이 나오길 바라는 건 이제 무리다. 아직도 ‘빠’에 물든 사람들은 이제 김대중도 노무현도 버리길 바란다. 그들은 이 시대의 영웅으로 자격을 잃었다.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시간은 거두어진 지 오래이고, 그들은 그에 합당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권리와 오만에 사로잡혔고, 어떤 경우에는 탐욕에 물들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과의 상대적인 비교마저도 그 자체가 ‘시대를 버리겠다 ’는 선언을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러니 이젠 버려야 할 유산이다. 그들은 후계자마저도 키워놓지 못했다. 그들이 아니라 이 시대가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부터 다시 우리는 영웅 만들기의 시대에 돌입하는 지도 모른다. 난세다. 안중근의 하얼빈 이토 히로부미의 척결과 같이 한국 내에서 친일의 수괴들이 어떤 형태로건 응징(膺懲)을 받지 않으면 안될 것이고, 피(paper)를 뿌리거나 혹은 촛불민심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는 사냥개의 모가지를 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이들에 대한 저항의사 표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 시점이다.

나는 그 런 이 를 영웅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본다. 그만큼 이 시대의 기운 자체는 친일이란 안개 속으로,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 척의 자그마한 배의 운명이 되고 있다. 특단의 열쇠가 없이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 수가 없게 보인다.

김진홍은 그것을 재삼 재사 확인해준 것에 불과하다. 그가 그런 종속(種屬)임을 예전부터 나는 이야기 해왔었고, 예상에 한 치도 빗나가지 않게 그는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면서 지금까지 친일매국대열을 이끌고 오고 있다.

아직도 민심이 이를 모르거나 혹은 단순히 그의 사상적 훼절 변절 수준에서 이 문제를 파악하거나 비판, 비난한다면 아마도 그 어리석음이 천추의 한이 되는 날은 곧 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척결(剔抉)의 영웅은 이 땅에서는 살 수가 없다. 이 시대에는 살아있을 지 모르나 그렇게 되도록 이들 친일의 사냥개들이 우선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일본 기획자의 몫도 아니다. 그들에게 예쁨 받기 위한 그들의 선제적 처리는 아주 간결하고도 빠르게 공권력이라는 미명으로 들어올 것이고, 그는 통제된 언론과 여론 앞에서 한 치도 그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인터넷마저 통제코자 하는가의 이유는 간결하고도 간략하다. 바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이러한 일에 대한 후폭풍을 경계하는 심리, 바로 지독스런 공포감이 있다는 역설적 입증에 속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과연 이러한 영웅을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 시대의 영웅으로 자리해야 한다. 그러나 쉽지가 않을 듯하다.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몰지각(沒知覺)이란 벽(壁)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만 간다. 여기에서는 꽃을 피울 자양분을 기대하기 어렵다.

침묵하는 지식인들은 더 이상 이 시대의 지성(知性)으로 운운해서는 안될 일이다. 더불어 집단지성을 운운하는 것조차도 별로 기대할 바가 못 된다. 전쟁은 침탈을 목적으로 하지만 모든 가능한 수단과 인력이 모두 동원된다. 그에 비해 진정한 지성도 아닌 나약한 이성(理性) 수준의 지식으로는 이들을 당해낼 재간도 여유공간 한 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기다린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일이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스스로의 비겁(卑怯)에 변명(辯明)과 위안(慰安)의 물을 주고 있는 것인가? ”

안타까운 하루 하루다.

17. 광장이 서러운 민초#

광장(廣場). 아크로폴리스. 민심이 모였던 포탈 다음의 아고라(agora). 청계광장으로부터 광화문의 그 외침의 광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의 궤적을 보인다.

“소통(疏通)하자! ”

무릇 대화라는 것은 독백(獨白)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일단 편가르기로 들어갔다.

‘친일매국세력과 민초(民草) ’라는 것이다. 이것이 ‘매국과 애국 ’이라는 경계로 아직 이르지 못했고, 나아가 ‘매국과 애국 애족 ’으로, ‘매국과 시대저항 ’으로 가기에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다. 친일정치세력의 잔수와 꼼수는 이것을 ‘갈등과 분열 ’로 몰아가는 데 아주 익숙하고, 그들에게는 공권력이라는 동원무기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권이 꺼낼 수 있는 모든 회유와 압박, 그리고 ‘그들끼리 ’의 소통과 담합을 전제로 움직인다. 이런 환경에서 민초는 쇠스랑에 묶인 채 질질 끌려가야 하는 운명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렇게 끌고 가고자 한다. 매를 들어서라도 길들이고자 한다.

여기에 진정한 항거(抗拒)는 성립조차 되고 있지 않다. 이상한 평화주의가 고착화되는 추세다. 그것을 촉발시킨 장본인은 누구인가? 바로 어설픈 종교적 신념이다.

“질긴 놈이 이긴다. ”

이 구호는 과거 반독재와 민주 투쟁에서는 먹혔지만 친일 사냥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한 수(手)였다.

(제주4.3사건 [1947.3.1~1954.9.21] 당시 제주도를 순시 중인 이승만. 현 정권 들어 국방부는 좌익무장폭동으로 규정하고 교과서 개정을 요구했고, 제주민들은 아직 진상구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제국주의적 관념인 일본의 극우와 우익 의 그들 세력에 대한 신념 은 1930년대도 그랬지만 1950~60년대조차 이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야쿠자를 정치깡패로 동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백골단 수준이 아니라 이들은 직접적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한국 집권자들이 동원했던 ‘서북청년단 ’이나 폭력적 깡패집단의 활용과도 통한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부류의 정치적 이용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히 2008년 현재 한국이란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저항에는 ‘인정도 사정도 없는 ’강압만이 그 해결책으로 등장해 있다. 이들은 세상을 보는 관념이 보통의 사람과는 아예 다르다. 그걸 꿰뚫지 못하고 치기(稚氣) 어린 봉합을 했던 종교세력과 종교인들의 책임 또한 언젠가는 그 진상(眞相)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덩그렇게 민초만 남았다.

이름없는 학생과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이 대열에서 분노를 폭발한다. 그러나 힘이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가?

상대를 잘못 읽었다. 이들 일본을 모태로 하는 세(勢)의 특질(特質)을 이해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다.

여기서 그들은 ‘정부와 국민 ’이라는 관념으로 현 사태를 보지 않는다. ‘적과 처결(處決) ’이라는 형식이 존재한다. 일본식이다. 철저하게 절대 훼손할 수 없는 가치를 선정해 두고 그 가이드라인 이상에서는 무조건 밀어붙이기를 끝까지 한다는 것이 그들 식의 신념이다. 그 와중에 온갖 수법이 동원된다. 회유나 압박은 물론이고 법과 질서라는 입헌(立憲)의 해석까지 들먹인다. 이것을 부조리하다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다. 그것이 본래의 그들이다.

설움이 깊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대가 하나의 궤적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알거나 혹은 그저 느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란 땅에 대한 애정이 급속히 식어간다. 그들에 대한 분노도 그렇지만, 그것을 묵인(默認)하면서 무관심과 개인주의에 젖어 든 사람들이 더 밉게 보인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의한다.

‘저들은 친일 속에서도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구나! ’

나라를 빼앗기는 건 잠시 잠깐만이다. 정신을 잃어버리고 난 이후에는 국토니 국가, 사회는 당연히 서서히 물들게 된다. 시대야 이러한 와중에서 고스란히 상납(上納)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바로 우리 시대에서 우리 역사 자체가 종언(終焉)을 고하게 된다는 의미와 바로 통한다. 그 이후는?

여기에서 바로 문제가 생긴다.

안일하게 이를 인정했던 사람들이 과연 편하디 편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역사는 이러한 침탈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처음부터 침략과 약탈(침탈)이라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90%의 민초들은 노예화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10%는 높은 확률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습게도 이 자리도 벌써부터 정해 지고 있고, 그 즈음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바구니조차 없게 될 것이다. 결국 묵인한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은 ‘환상 ’(幻想)이었다는 건 이내 증빙될 일이다.

그래서 광장을 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이제는 한계다. 새로운 변곡점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시대는 그렇게 그들이 의도하는 바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그들 또한 물러날 곳이 없는 전력을 다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민초는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열세(劣勢) 수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최선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농조(籠鳥)의 시대가 열리면, 언어는 닫히고, 새장 밖으로 흘러가는 소리는 엷게 된다. 창공을 날고자 하는 희망만 그득하지만, 조롱의 문은 굳게 닫혀진다.

일본 극우와 우익의 세력이 극악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모두 ‘친일의 재구성 ’을 통해 사냥개를 양성하면서 진행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한 사회 국가 속의 내부적인 문제인 것처럼 비치게 만든다. 그러나 본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 또한 조롱 속에 들어있는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왜 뚫고 나오지 않는가?

선민(選民)이란 의식이 있다. 일제 시대의 내선일체(內鮮一體)와도 같이 이번에는 ‘그들 ’과 ‘그들끼리 ’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버렸다. 그래서 담합을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냥꾼의 입장에서는 사냥개를 자신의 동반자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도 희생자이긴 하지만 자발적이며 능동적으로 시대 앞에서 변절(變節)을 감행한 점에서는 역사의 죄인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 이들과 상대하는 민초에게 아직도 역사와 시대에 대한 올바른 조망(眺望)이 가능한 눈은 도수가 높거나 낮은 환경에서 몹시 흐릿하게 보인다. ‘설마? ’라는 단어는 여전히 서울을 횡행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라는 말로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 일이 거짓은 아니라는 점, 이런 경우에는 어찌 해야 하는가? 반문해야 할 상황이다.

쇠고기 파동으로 나타난 촛불민심은 6월 30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청앞 집회를 고비로 해서 ‘질긴 놈 ’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다른 결정적) 계기를 잡을 수도 있을 거야 ”, “다른 방식도 있지 않겠어 ”, “어차피 4년이잖아 ”라는 등의 마음도 흘러 나온다. 스스로 미약한 힘을 가진 민초라는 사실에 분기를 내뱉는 사람의 숫자도 늘어가다가 침묵하는 모드로 떨어진다. 절묘하게 기가 꺾인 형국에서 친일정치세력이 오히려 때를 보고 있었던 것이 증명된다.

다시 ‘경제 살리기 ’라는 테마로 돌아왔다.

확실히 죽어버리지도 않는 모르핀의 처방이 시행되는 환경에서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통제하려는 어떤 의사와 간호사의 사악함에 치를 떤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모르핀을 투여한다.

불쌍한 민초다.

나 또한 그러하지만, 지금 이 순간, 광장은 전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저들의 간교하고 악랄한 기획 앞에서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속절없이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하는 상념에 젖어 있다. 첫 단추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단추들이 가슴에 있어야 할 부분이 팔목으로 가고 심지어 속옷으로까지 엉켜있다. 그래서 풀지를 못한다. 아마 저들은 천천히 자기네의 입맛에 맞게 하나씩 단추들을 여기 저기로 꿰 맞추어 갈 것이지만, 그 때는 시대가 완전히 고사(枯死)하고 난 다음이 될 것 같다.

18. 그대의 시대는 타자(他者)#

분단역사 60년 동안 친일은 질기디 질긴 바이러스처럼 한반도 남부에서 기생해왔다. 그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분단 ’(分斷)이 가진 멍에에 있었다. 좌파 우파라는 냉전(冷戰)이 이어졌고 남한 내의 정권은 그들 이익에 맞게 적절 히이를 활용했다.

반공(反共)의 시대에는 통일(統一)을 위한 숱한 무리수가 벌어졌다.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이 반독재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간, 정권은 대체로 이들에게 ‘빨갱이 ’라는 고깔을 씌우면서 한국 전쟁 이래 국민들에게 남겨진 공포감을 확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한 연대기에는 남북한 모두에서 분단은 철저하게 적대적으로만 성립되는 주제였을 뿐이며, 아무런 희망도 가지기가 어려웠었다.

80년대 말 국제적인 냉전 종식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시간은 더 길어졌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되며 러시아연방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중국 공산당은 해체가 아닌 개혁개방이란 수정주의를 선택하면서 오히려 힘을 키웠다. 중국이란 노동과 시장이 결합된 땅을 향한 발걸음에는 이미 이념은 없게 보였다. 그로써 사실상의 이념적 냉전보다는 ‘경제와 외교 ’라는 다른 바탕 하에서 협력과 경쟁이란 시대로 돌입했었다.

남북한은 그 흐름을 타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그 시간은 지난 십 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십 년의 기회에서 남과 북이 남겨놓은 것은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곪아가는 ’형세가 있었을 뿐이다. 금강산과 개성은 정치적 결정이었지 결코 ‘경제 ’라는 관점에 있지 못하다. 중국이 2006~2007년 두 해에 걸쳐 집중적으로 개성공단을 조사했던 결과는 고스란히 중공당 중앙으로 보고되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아직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상당 기간 내에는 특별한 일이 없을 듯 합니다. ”

(개성공단. 볼모인가 협력의 모델인가? 북한은 12.1자로 출입단속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남한은 약간 당황한 모습이지만 전혀 ‘꿀리지 않고 ’원칙대응을 한다는 모양새다. 과연 서로의 진심은 무엇일까?)

6.15선언과 10.4선언 모두 결정적 결함을 가지고 배태된 기형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부터 친일정권은 탄생했다고까지 이야기해도 좋을 법하다. 과정을 그렇게 만들었다. 눈을 밖으로 돌리기보다는 내부적인 수습에 바빴던 것이고 그 사이 ‘통일장사꾼 ’만 양산해버렸다. 오히려 그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통일운동이 거의 사장(死藏)되고 마는 짙은 모순마저 생겼다. 질 낮은 매너리즘에도 빠졌다. 사회에서 그에 반감을 가지는 ‘갈등구도 ’가 너무 크게 증폭되어 버렸다. 이른바 남남갈등이다. 그건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친일매국세력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친일 기반의 한나라당이란 보수 야당과 기업, 그리고 사회단체와 본질과는 유리되어 상업화 되고 세속화된 방향으로 변질된 종교를 포획했다. 여기에 정치세력을 구축했다. 당연히 다음 수순은 바로 ‘친일의 재구성 ’에서 ‘친일의 고착화 ’를 위해 선거라는 형식까지 빌려 한국땅에 안착을 했다. 그 길도 사실상 지난 십 년의 정권이 열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걸 부인한다는 것은 세월의 연속성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은 이것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들이 과연 어느 수준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에 대해 지난 반 년여 탐색을 해보았다. 불행하게도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2004년 이후 일본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걸면서 북한과 일본 내 조총련과의 연계를 끊는 작업에 착수했고, 조총련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압박을 가했다. 선(線)이 단절된 상태에서 평양이 받았던 정보는 허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획자의 의도가 어느 만큼 치밀하게 움직였는가를 볼 수 있다. 적어도 일본에게 있어 북한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철저히 차단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 중에 으뜸은 정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남북한 문제는 하나의 국가관점이 아니라 ‘세력 ’관점으로 시각을 달리해서 봐야 하는 필요가 높아진다. 즉, ‘민족 ’이라는 세력권이다. 이것이 형성되지 않으면 다른 외부의 세력이 이를 훼손하려고 하고, 그를 위해서는 남과 북은 어떤 형태로건 불편한 관계에 있어야만 한다. 일종의 분열조장이다. 그러기 위한 첫 발을 남한으로 돌린 것이 일본이다. 이것은 아주 오랜 기간 준비된 침탈이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씩 점검해보라. 그럼 보인다.

이미 한반도 남부는 친일매국세력에 의한 친일정권이 들어섰다. 그들의 의도 가점진적으로 드러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도층 내부는 그들 눈 앞의 일을 처리하기도 바빴다. 그들도 어찌 보면 역사안전망은 무너진 부분이 있었다고 볼 대목이다. 그런 상태에서 남과 북은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없게 된 상황이 이어질 수 밖에 없 다.

‘선군정치 ’십 년, 여전한 경제적 궁핍과 식량부족, 핵 하나만으로 지켜내는 국가보위의 관념은 대화와 타협에 의한 새로운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깔 ’이라고 부르는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해제, 그리고 핵 무기를 통한 교환가치의 유지에 전력을 기울이는 와중에 남한의 친일을 묵인하고 수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이것이 그들의 21세기 최대 패착이 될 거라는 반성이 그들 내부로부터도 나오는 시기가 있을 것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문제는 현 시점이지만, 그들의 공간은 협소하게 보인다.

상대적으로 남한의 정권은 이런 부분에서는 여유롭다.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다. 괜스레 대화를 하자고 해도 불편한데 알아서 자신들이 그만두겠다고 하고, 관광객까지 피격을 해주니 살판이 났다. 국내에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고 싶지만 원칙을 지킨다 ’라는 한 마디면 족하다. 그만큼 지난 십 년의 남남갈등에서 북한 문제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로 비하되어 버린 흔적이 크다. 그러니 이런 조치도 가능하다. 이것은 보수적인 관념으로부터 출발된 것이 전혀 아니다.

버락 오바마가 이겨버린 미 대선의 결과가 충격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남한의 위치는 일본을 통해서라도 미국에게 내년 상반기 이내는 대북문제 접근을 전폭적으로 하지 말 것을 주문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건 미국이 결정할 문제다. 남한의 친일정권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금 너무 잘 되는 것 ’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책적 협의니 과정을 거쳐야 하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시간이 훌쩍 지나갈 공산이 크다. 그만큼 미국에서 벌어져 있는 경제위기의 실상은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그게 일 순위로 보인다.

이 상태에서 북한이 내년 상반기까지 남한의 친일정권에게 ‘민족 ’이라는 세력의 재구성을 하자고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북한이 남한의 친일을 묵인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역으로 그런 제안을 받았으나 남한이 거절한다고 하면-여러 이유를 붙여서-그건 친일정권이 ‘아직 때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해석은 이처럼 간단명료하다.

(북으로부터) 제안이 온다고 하더라도 (남한이) 실제로는 ‘거부 ’할 것이라는 조짐은 정권 등장 이후 줄곧 그래왔지만 지난 10월에도 여전히 이어졌고 11월도 마찬가지 다. 그래서 삐라살포도 묵인한다. 굳이 좋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거기에 ‘원칙 ’이란 단어를 가지고 정책 수정을 하지 않는다. 김진홍의 발언은 정부를 대변한 것이 아니라 친일정권의 대변인으로 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하려고 해도? 사실 실행각론을 가진 정책도 없다. 대화 자체를 시작해보지도 않은 정권이 고 그걸 염두에 둔 적이 없 다. 허공으로 마구 말대포를 쏘지만 그것뿐이다. 그리고는 기다린다.

분단의 시대가 가진 역설적인 힘은 바로 ‘변화를 통한 시너지 ’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지만 남과 북은 서로 전혀 이것을 취사선택하지 않고자 한다. 둘 다 어리석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남한의 친일정권이 더 똑똑하다. 추구하는 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고 남쪽은 그 목적을 위해 작전대로 잘 움직인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변변한 두뇌싸움이 가능한 비책(秘策)이 나오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들도 나름대로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고식화된 대응 틀 이외는 없게 보인다. 그러니 100여 년 전에 한반도를 침탈했던 경험이 있는 일본 제국주의와 팽창주의에 익숙한 일본 내 기획자의 머리를 따라갈 재간이 없다. 거기에다 남한에는 이미 직간접의 친일 을 ‘시대정신 ’으로 대세로 자리 잡게 만들려는 사냥개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무슨 지금 서로 간에 해댈 ‘간첩질 ’도 마땅치 않다. 김정일 와병설에서 드러난 것처럼 남과 북은 서로 간에 오랫동안의 ‘정보수집 ’행위를 하고 있고, 또 다양한 각도에서 ‘간첩 ’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어느 일방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렇게 체제의 대립과정에서 돌아가는 일이지만, 지금 당면한 친일 문제는 전혀 다른 각도다. 남한 내에서 이것이 제어되지도 못하고 수용되고 있다. 국가기관조차도 이것을 방치한다. 왜냐하면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정권이 그렇게 형성되었기에 그렇다.

자주 거론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도 한국에 간첩이 있고, 일본은 더 많다. 동맹도 그러한데 정전상황의 분단국가가 그런 수준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흐름일 뿐이다. 이것이 곧 시대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되기는 어렵다. 그건 고도의 정책결정이며, 정보분석과 판단, 그리고 실행이라는 국가적인 시대 만들기와 연결된다. 이 부분에서 남과 북은 지금까지도 실패했지만, 현재도 실패하고 있다.

완벽한 타자(他者)의 모습이다.

‘민족 ’이라는 하나의 세력을 발견하 고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 지 못한다면, 이 시대는 완전하게 죽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절망하는 수준이 아니라 시대가 단절됨으로써 우리 다음 세대는 시대의 연속성을 맛볼 수도 없고, 나아가 제대로 된 시대의 의미를 찾기도 어렵게 된다. 이건 정해진 수순이다. 사실상 이것이 마지막 변곡점이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타자의 시대 ’를 오랫동안 맞이할 듯하다. 살아가면서도 전혀 다른 시대와 세상을 구경하는 하루 하루가 이어질 것 같다.

19 . 죽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시대를 읽고 있는 죄(罪)#

1995년 이후 지금까지 나는 ‘신 임진왜란 ’과 ‘신 을사늑약 ’과도 같은 일본의 한반도 침탈 구도를 추적해왔다. 그들은 집요하기 그지 없었다. IMF 이후 김대중은 그들의 앞길을 환히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담합을 유지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매국노로 불려도 어쩔 수 없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가 지금껏 닦아 둔 활동과 인맥이란 길을 통해 일정 수준의 ‘대접 ’을 받을지는 몰라도, 그것과 이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노무현은 친일인명사전으로부터 독도문제에 이르기까지 꽤나 화려하게 저항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일본의 침탈구도를 공고화 시켜주었고 나아가 친일세력이 정치계로 급속하게 삼투되어 가는 것을 방치했다. 한 시대를 책임진 대통령의 자리에서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 묵과(默過)했다는 표현이 옳을 듯하다. 그래서 그 또한 시대 앞에서는 죄인이 됨을 피할 길이 없다.

변명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정권의 공동지분을 가졌다고 인정된 안희정이 “우리 역사 5천 년에 우리가 맡은 부분만 잘하면 됩니다 ”라고 말했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나라와 시대 지키기 ’에는 실패했다. 마치 경계에 실패한 초병(哨兵)과 같았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십 년의 정치적 화장질이 ,비록 외부적인 한반도의 운명 같은 난맥이 걸려 있었다고는 하나 그에 만족하는 이른바 북한측 통일꾼들의 손아귀에서 정권이 놀아나 버렸다. 진정성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시대읽기를 하지 못했다 는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국민도 예외 없다.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지역과 이념의 갈등, 그것으로 포장된 개인주의와 사적 이익에의 집착, 개념 없이 추종하는 종교성 속의 몰지각, 그리고 시대 속에서 죽어버린 지성(知性)이 범벅이 되면서 한국 사회를 휘감았다. 결과는 참혹했다. 지금 그 첫 변곡점을 보는 것일 뿐이다. 앞으로도 회오리는 더욱 넓고 빠르며, 깊어질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감당하고 끝날 죄업(罪業)이라면 언제든지 수용하겠지만,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이 내려질 듯 보이지 않는다. 앞서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 땅의 조상들 께서 계셨고,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많은 다른 시대의 후대들이 있으니 결코 나 혼자의 일은 아니다. 그래서 무겁기 그지 없는 주제를 부여잡고 끙끙 앓고만 있다.

대저 상식이 그저 통하는 시대라면 좋겠으나 지금은 그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것이 전쟁 상황이 가진 현상이다. 그 속에서 진실은 아주 심각하게 훼손당한다. 그러나 진실은 진실이다. 건조한 진실은 상식과는 다르다.

(2008.11.7 뉴라이트 3주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이상득, 오세훈, 박희태, 김진홍, 김덕룡이 있는 자리다. 결합구도를 잘 말해준다. 이상득을 뺀 사진이 유포되기도 했다. 그는 한일의원연맹을 꿰어 찼다. 본격적으로 일본과의 딜을 시작할 모양이다. 이들이 ‘국민화합과 대한민국 선진화 시대를 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

공기불비(攻其不備), 즉, 우리가 갖추어져 있지 않 은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일본세의 집요함이 무자비할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도 민초는 각성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것일까?

혹자는 사회 국가 내부의 정치적 몇 가지 결과를 두고 이야기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연원이 깊고 두텁다. 분단 60년의 매너리즘에 깊어진 갈등, 어느 사이 강하게 계급화 되어버린 사회와 무관심의 절정이라 할 수 잇는 개인주의 속성이 시대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율곡의 십만 양병도 없거니와 왜침(倭侵)에 저항하는 의병도 없다. 그야말로 조용히 시대를 내어주기 일보직전이다. 산발적이고 부분적인 저항은 저들에게 적절한 압박의 동기부여를 해준다. 감초구실을 하는 셈이다. 저들은 그것을 오히려 반긴다.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속성을 읽었기 때문이다. 광화문의 명박산성이 ‘질긴 놈이 이긴다 ’한 마디에 더 견고해진 것처럼, 저들의 기획은 교활하고도 간사의 극치를 보여준다.

친일매국세력의 특질고(特質考)가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철저히 일본 극우와 우익의 중추세력, 그리고 그 기획자의 농간(弄奸)이라는 사실에 대해 주목할 여지도 많지 않다. 그걸 누가 드러내놓고 하겠는가? 그들이 바보는 아니지 않는가?

건조한 진실은 이처럼 찾아내서 제시하기가 어렵다. 상황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역공을 받는다. 허위정보유포라는 명목으로, 또는 민심교란죄라는 조선시대에도 함부로 적용되지 않았던 법이 적용되는 세상이다. 여기 어느 한 줄이 잘못된 것이 있다면 내가 책임을 진다. 그러나 저들은 이 책임마저도 저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부른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사실상 ‘개’가 된 인물들이 사회 곳곳에 그만큼 많다는 확신일는지도 모른다.

두려운 것은 민초가 ‘온순하며 수동적으로 ’벌써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몰지각 (沒知覺) 의 본질이다. 알고 느낌이 없는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과 만나서 이야기 해봐도 그런 유형이 더 많았다. 지식인 일수록 그랬다. 한국이 대학교육을 마친 고등교육에서는 높은 퍼센티지 의 수준을 기록할 지 모르나 시대를 읽는 눈에서는 지금 지성의 안과(眼科)에 다시 등록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병원은 사실 없다. 스스로 각성하는 도리 이외는 없는 게 사회이고 시대니까.

분노도 마찬가지다.

포획은 아주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적절한 분출구를 만들어주면서 김빼기를 한다. 한꺼번에 목을 치는 게 아니라 서서히 고사시키는 것처럼, 우리 속담에 피 말려 죽이는 것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이것도 작전 중에는 아주 고등전술이다. 모르는 사이 발 밑에 차오른 물은 어느새 우리의 턱 밑까지 차오르게 되어 있다. 역사 속에 이러한 전술은 언제나 가장 효율적인 대상의 포획 방법이었다.

우리 시대에 희망을 걸 정치인이 사라지면서 두 가지의 전제가 내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친일이 아닌 자를 찾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만의 고유한 ‘민족 ’이란 세력을 온전하게 살려줄 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나는 첫 번째 문제로부터 두 번째로 오가면서 이 변수를 살펴보았다. 이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 절대절명의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쉽지가 않았다. 이 두 가지는 단순히 사회 국가라는 영역이 아니라 외부의 대상을 기본으로 하여 움직여지는 변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봤을 때는 실패했다고 자인(自認)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어느 때, 이런 그림을 다시 안고 누군가 새롭게 화구(畵具)를 챙겨들 사람이 있을는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당면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목숨을 걸고 다 해보고 나서는 이 과제는 더 이상 나의 몫으로만 남아있지 못하게 되니까. 실패한 자가 무에 더 변명을 하겠는가.

이 결과를 두고 다시 한 번 변수찾기를 해볼 수 있게 될 가능성마저 없다.

너무 지쳤다. 지난 14년, 길게는 20년 동안 나는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게 이 시대가 준 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못하게 한 것은 지속된 공격 받는 침탈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대가 굴러가고 있었다.

몇 차례의 죽음보다 깊은 절망과 죽음의 목전 상태에서도 내가 떠올린 것은 나의 조상들과 나의 후대들이다. 그들에게 나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활계(活戒)에 처한 그저 단독자였을 뿐이다.

이제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그동안 해왔던 변수찾기라는 무거운 짐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하자고 넘긴다. 그에 대한 판단은 나의 몫이 아니다. 찾지 못한다면, 이 시대는 이제 침탈 속에서 새로운 본질로 재구성될 것이다. 그리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성(理性)은 온당한 삶이 아니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생을 이어갈 백성들도 많아질 터이다. 그마저 없다면 영혼 없는 삶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그건 돼지보다 못하고, 저기 산 기슭의 땅을 헤집고 기어 다니는 곤충처럼 사는 것이니. 겉으로 아무리 요란한 장식으로 치레를 해본 들 사람의 목숨 값으로 쳐주기 어렵다.

역시 죄(罪)란 무섭다. 살아가면서 숱하게 실패하고 죄를 짓기도 했지만 이 시대를 보는 죄값이 이렇게 무거울지는 나이를 먹어가며 이제서야 어렴풋이 느낀다. 잘못 산 것인지, 어떤지. 그래도 이 기록을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주 건조하고 건조한 진실 찾기의 행렬은 나를 대신하여 많은 사람들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나보다 훨씬 많은 죄를 짓고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 시대는 허상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있던 허상을 이젠 과감하게 버린다.

한국은 ‘완전한 친일 ’로 치닫는다.

분노하거나 않거나 선택에 대한 허상 하나도 이제 버린다. 자유의자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이 땅의 한 사람이 된 자의 도리다. 그래서 추천한다. 허상을 버리라.

정히 버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차라리 나는 그 허상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들의 영역인 10% 속에 들어가서 영혼마저 버리고 사는 것을 선택해도 좋다. 그것이 그대의 허상이라면.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해서 나의 허상(虛像) 을 버린다.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들 (不知不行者) 에게 새롭게 만들어질 우상(偶像)은 저기 섬나라 일본 도쿄 치요다구 일 번지에 가서 열심히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경배(敬拜)를 사악하게 원하는 모양이니까. ( 2008. 11. 8 작성을 시작하여 11.13일 끝낸다. 담담당당 )

(* 인생은 무지개 위를 나는 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시대는 무엇일까? 그런 의문으로 하루를 보낸다. 세상은 복잡계의 한 가운데를 치닫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말하는 한가로움보다는 한 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미 없게 여겨지기도 한다. )

(* 들판. 거기에 서면 하늘이 멀리 보이지 않는다. 가깝다. 한 시대를 보는 눈에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없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속에 의무가 없는 날이 없다. 당신은 정말 이 시대를 지키는 지킴이의 구실을 하고 있는가? 열거된 몇 사람이 아닌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오늘의 시대에 친일은 불가하다. 친일의 사냥개는 불필요하다. 당신들의 그러한 이성은 이성이 아니다. 이런 자들이 사는 땅이 이 시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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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늘푸른섬
글쓴이 : 깨어있는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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